너는 아닐것 같지?

매달 반복되는 고지서, 카드대금, 보험료, 각종 할부금까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삶은 더운 여름날의 태양처럼 숨이 턱턱 막혔다. 이 나라의 구조가 문제일까? 아니면 내 월급이 문제일까? 아내에게 질문한다면 고민도 없이 후자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우리 가족의 씀씀이가 문제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원인이 무엇이든 지금 당장 급한 건 해결책을 세워야만 했다. 세 명의 가족 구성원이 한 명이 벌어오는 노동의 임금으로 살아가는 건 지금 시대에는 전쟁에 나가면서 총만 챙기고 총알을 안 가지고 나가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삶을 영위하는 행위는 어찌되었든 돈이라는 소비의 연속이었다. 결국, 육아와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시작한 외벌이는 철옹성 같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백기 투항했다.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선택한 건 맞벌이였다. 특출나지도 특이하지도 않은 뻔한 결과였지만 그마저도 문제점이 튀어나왔다. 가장 큰 걸림돌은 그들의 딸 지수였다. 아직은 어린 자신의 딸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어 어린이집에 맡기기로 결론지었다. 이때의 선택이 지수와 지수 부모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처음 지수의 부모님은 지수를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으레 다른 부모들도 그러하듯 “다른 아이들과 잘 지내. 선생님 말씀 잘 듣고”라며 지수에게 말한 뒤 선생님을 보며 “우리 딸. 잘 부탁해요.” 라며 전달한 말이 부모의 마지막 전언이었다. 비겁한 변명이지만 지수를 신경 쓰기엔 부모의 맞벌이 삶은 너무나도 바빴으며 지수 또한 여느 아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인간관계에선 상대방이 한발 다가오면 나 역시 한발 다가가고 상대방이 거리를 두면 나 역시 거리를 두듯 적당한 밀고 당김이 필요했다. 이건 지수 또래의 아이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손 내밀고 화답하고 어울리는 아주 간결하고 깔끔한 순환구조의 규정이었지만 때론 누군가에겐 아주 간단한 일이 다른 누군가에겐 어려운 법이기도 했다. 그게 지수였다. 누군가 지수를 처음 본다면 태어날 때부터 자체 음소거 장치를 달고 태어난 아이라 평할지도 몰랐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또래의 아이들 사이에선 조용한 아이에서 아무 대답 없는 아이로 인식되었고 결국 이상한 아이로 낙인찍혔다. 그런 모습을 보고 어린이집 선생님이 주의를 주어도 그때뿐이었다.
침묵 속에서 사는 아이. 그게 선생님들이 지수에게 내린 주홍글씨였다. 결국 지수는 어린이 집에 들어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의 공식 외톨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지수가 세상의 모든 것에 관심이 없는 소녀는 아니었다. 계절의 변화에 맞춰 옷을 바꿔입는 들꽃과 나무에 녹음에 경탄했고 사람에게 버림받은 동물들에게 연민을 느꼈으며 자연을 통해 삶의 탄생과 죽음을 배웠다. 지수에겐 그 모든 것이 최고의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그런 지수를 이해하기엔 또래의 아이들의 생각으로는 무리었기에 지수가 외톨이가 되는 건 예견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늘 혼자였지만 지수는 외롭지 않았고 행복했다. 그렇기에 오랜 시간 자신의 행복이 지속되길 바랐다.
하지만 세상은 어린 소녀의 꿈을 짓밟아 버렸다. 이제 세상은 지수의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빙자한 감시를 자행한다.

“메시아예요.”
“사탄이라니까요. 어떻게 7살짜리 꼬마애가….”
“애 부모가 시킨 사기 아니에요?”
“노이즈 마케팅 아닐까요? 어린 시절 커다란 이슈 몰이로 데뷔하려는….”
“과학적으로 볼 때 지수가 보여주는 행동은….”
“구원받으십시오. 예수님이 능력이 지수에게 투영된 것입니다. 곧 부활의 날이 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회계하십시오.”

TV와 라디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선 온종일 지수의 이야기만 쏟아져 나왔다. 수백, 수천 개의 눈이 오직 한곳만을 바라보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같은 꿈을 꾸어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논리로 접근하는 게 사람이라는 족속인데 지수를 7살의 어린 소녀가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발현시켜 줄 매개체이자 디딤돌로 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지수를 평가하니 미디어에서 쏟아내는 그들의 논평은 안 봐도 뻔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미디어 메시지에 숨어있는 진짜 의도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중이 열광하고 관심 있는 건 오직 자극적이고 입맛을 당기는 콘텐츠. 즉 지수라는 어린 소녀에게만 사람들은 열광하고 흥분했지만 자신들의 병적인 관심과 집착, 감시로 인해 어린 소녀가 받을 심리적 압박과 상처는 그들에겐 관심 밖의 일이었다. 어쩌면 인간이 쓰고 있는 페르소나(Persona)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이기주의가 바닥에 깔린 또 다른 그림자였다.
열기는 식을 줄 몰랐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커졌고 감시의 눈길도 더욱 많아졌다. 광기에 가까운 집착과 관심이었다.

그럼 왜 수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어린 소녀에게 열광하게 된 걸까? 그 이유는 지수의 특별한 능력 때문이었다. 보고도 믿기 힘들 정도의 기적에 가까운 치유력이 지수의 능력이었는데 잿빛 갈색을 띄며 죽어가던 식물의 잎사귀를 감싸 쥐면 거짓말처럼 다시 파릇파릇하게 살아났고 썩어서 짓무른 채소나 과일을 만지면 방금 수확한 것처럼 싱싱해지고 탱글탱글해졌다. 더욱 놀라운 건 이런 능력이 식물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통용된다는 것이었다.
감히 신에게 도전할만한 능력.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가 수반되는데 지수의 능력은 원인이 만들어 놓은 결과를 뒤집는 행동이었으며 일상적 관념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일어날 일은 정말로 반드시 일어나게 되는 걸까? 지수의 능력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
어린이집에 들어간 그해 가을의 끝자락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쯤 길가에 핀 코스모스들은 바람의 손길에 살랑거리며 흔들렸고 나무에 붙들려 있던 단풍잎들은 검은 아스팔트 도로 위로 낙하하여 칠흑 같던 도로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였다.
지수는 낙엽 비가 내리며 탐스럽게 익어가는 거리의 모습을 어린이집 창문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의 지수였으면 벌써 밖에 나가서 자연을 느끼고 만졌을테지만 그러지 못했다. 최근 몰래 어린이집을 빠져나갔다가 들어온 사실을 어린이집 관리 선생님에게 들켜버린 탓에 부모님이 오시기 전까진 무조건 어린이 집 안에서만 행동하라며 자유를 제한하는 처분이 내려졌다. 불시에 족쇄가 채워지고 자유를 박탈당한 지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창가에 기대어 밖을 내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름지기 생명의 아름다움은 촉감을 느끼고 고유의 냄새를 맡으며 존재의 인식이 각인될 때에 있는 법이다. 연인들도 사랑하는 사람의 살결을 만지고 느끼며 냄새 맡으며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듯 지수에겐 창밖의 풍경은 이미 어린 소녀의 마음을 훔쳐간 카사노바였다. 때마침 노란 은행잎이 유선을 그리며 낙하했다.

“예쁘다.”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미 어린 소녀의 마음은 도로 위에 있었다. 결국 지수는 밖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어린 소녀의 두 발을 묶어두기엔 지수에게 채워놓은 말의 무게는 가벼웠다. 다행히 어린이집의 선생님은 늘 정신없이 바빴고 관리해야 하는 아이들은 많았다. 다른 아이들은 지수처럼 조용하지 않아 선생님들의 정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기회를 엿보던 지수는 선생님들의 시선을 피해 조심스럽게 어린이집을 빠져나왔다.
문밖을 나오자 가장 먼저 가을바람이 지수의 콧잔등을 간지럽혔다. 흙냄새가 섞인 풀 내음이 스며 들어왔다. 지수는 천천히 들숨과 날숨을 내쉬며 바람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처음 겪는 가을도 아니었지만,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가는 가을 날씨로 인해 지수의 마음은 이미 들떠있었다.
기대감으로 가벼워진 발걸음을 한 걸음씩 옮길 때 커다란 배기음과 함께 빠른 속도의 자동차 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붉은 루즈를 곱게 바른 듯한 매끈한 스포츠카가 거칠게 지나가자 모세의 기적처럼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낙엽 잎들이 날리며 다시 도로 옆으로 밀려났다. 그 모습을 보자 지수는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스포츠카는 자신을 과시하듯 더 큰 굉음과 더 빠른 속도로 도로 끝에서 다시 끝으로 도돌이표 노래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했다.

“무슨 운전을 저렇게 해!”
“저런 미X놈을 봤나!”

새로운 먹잇감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굉음의 빨간 차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다들 한마디씩 덧붙였지만 짙은 선글라스의 운전자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마저 즐기며 지금 이 순간의 행동 자체가 하나의 놀이인 듯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을 이어갔다. 언제 사고로 이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일촉즉발의 상태였다. 바로 그 때 어디선가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총알처럼 도로위로 튀어나왔다. 붉은 차는 여성의 머리칼처럼 긴 스키드 마크(Skid mark)와 함께 비명처럼 찢어지는 마찰음을 낸 후에야 세워졌다. 차는 겨우 멈춰 섰지만 강아지는 이미 차에 치여 도로 멀리 튕겨 나가버린 뒤였다. 튕겨 나간 강아지는 도로 한쪽에서 피를 뒤집어 써 자동차 색깔과 같아진 채로 가쁜 숨을 할딱거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어떡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자신들의 행동에만 집중할 뿐 강아지를 치료하려고 하거나 병원으로 옮기려 하지 않았고 일부는 이 광경을 핸드폰 촬영했다.
차에서 운전자가 내려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자신의 차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강아지와 부딪친 차 앞쪽을 살펴본 그의 이마에 작은 파동이 일었다. 그는 좀 더 정확하게 보기 위해 자신이 목을 거북이처럼 더욱 쭉 내민 뒤 검지로 짙은 선글라스를 콧등으로 살짝 내렸다. 차 상태를 확인하자 조금 전보다 더욱 깊은 주름이 이마에 새겨졌다.

“아 재수 없게.. 이게 얼마짜리인데..”

차에서 내리고 그가 뱉은 첫 감상평이었다. 하지만 이내 사고 주변으로 사람들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하자 그는 다시 빠르게 선글라스를 추켜올린 뒤 빠르게 사라졌다. 선글라스 남자가 떠나자 사람들은 그제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이미 사라진 대상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SNS에는 ‘스포츠카 무개념 남’, ‘○○동 강아지 사고’ 등의 이름으로 빠르게 동영상이 업로드되기 시작했고 동영상을 본 많은 네티즌의 키보드 움직임은 분주했다. 수많은 악성 댓글이 달렸고 운전자 신상털기도 시작되었다.

군중들에게 둘러싸인 강아지의 숨결은 이전보다 훨씬 약해져 있었다. 강아지 역시 자신도 얼마 남지 않는 생명을 직감한 듯 마지막 호흡을 힘겹게 내뱉을 뿐이었다. 언제 호흡이 멈춰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때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지수가 강아지 앞에 멈춰섰다. 갑작스러운 어린 소녀의 등장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호기심에 지수의 다음 행동을 지켜봤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져갔지만 지수는 강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뒤 자신의 두 손을 갈비뼈가 보이는 얇은 강아지 뱃가죽 위에 올려놓았다. 지수의 이상한 행동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쟤 뭐 하는 거야?”
“꼬마애가 강아지 마지막 기도해주는 건가?”
“조용히 좀 해봐.”

누군가는 호기심, 또 누군가는 무관심, 그리고 사람들의 이기심의 교집합에 대한 결론은 소녀의 행동을 끝까지 지켜보자는 것으로 결정한 것 같았다. 지수의 모습은 실시간으로 SNS에 생중계 되었다.
지수는 고사리와 같은 여린 손을 포갠 뒤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 후 몇 분 동안 몸이 굳어 동상처럼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잦아들었고 어느새 손끝의 작은 떨림만으로도 터져버릴 것 같은 긴장감과 적막만이 감돌았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났을까. 지수의 미간이 통증을 느끼듯 찌푸려지고 입에서 ‘아’ 하는 작은 신음이 터졌나왔지만, 다시금 밝은 미소와 함께 강아지에게서 손을 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었던 의식이 끝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피범벅이 된 강아지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일어나 꼬리를 흔들며 지수의 얼굴을 핥았다. 어떤 의학적 지식이 없더라도 강아지의 죽음은 예견된 미래였는데 자신들의 눈앞에서 기적을 일으킨 건 의사도 아니었고 더욱이 예수도 아닌 어린 소녀라는 사실에 사람들은 더욱 놀랐다. 모세의 기적을 본 이스라엘 사람들의 심정이 이러할 것만 같았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 비친 소녀는 어린 아이의 육신에 투영된 종교이자 신념이었고 희망이었다.
이후 해당 동영상은 ‘기적의 소녀’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퍼졌나 갔다. 뉴스에도 보도될 만큼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 날을 기점으로 지수의 삶은 180°변했다.영상을 본 사람 중 일부는 조작이라고 폄하했으며 또 다른 일부는 새 시대에 희망의 찬가를 불러줄 메시아라 칭송했다. 다른 일부는 지수를 악마이자 사탄이 씐 어린아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평이 어떻든 누구에게나 관심이 생길법한 이야기였고 주체가 어린 소녀였기에 화재성은 더욱 컸다. 며칠 동안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서 상위에 랭크될 정도로 가장 핫해져버린 지수를 방송국에서 놓칠 리 없었다. 대중들은 동물원 울타리에 갇혀 사육사가 던져주는 음식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맹수들처럼 대중은 미디어에서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이야기에 굶주린 맹수였고, 방송국은 대중들을 사육하며 시기에 맞춰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육사였다. 그렇기에 혜성처럼 나타난 지수라는 존재는 자극적이고 신선한 콘텐츠를 찾아다니는 방송국의 입장에선 입맛에 아주 딱 맞는 적절한 소재였다. 더욱이 자신들이 소녀의 능력이 가짜라는 것마저 밝혀낸다면 그 사회적 파급력과 명성은 덤이었기에 수많은 방송국에서 앞다투어 지수를 취재했다. 외국의 유명한 교수도 초빙하였고 저명한 기관들도 참여시켰다. 취재를 빙자한 지수의 능력 검증이었다. 모두의 관심 속에서 진행된 방송은 매 순간 지수의 능력을 테스트하고 검증했지만 누구도 지수의 능력에서 어떠한 조작이나 속임수 여부도 찾을 수 없었다. 그 말은 다른 의미로 지수의 능력은 진짜라는 의미였다.

이 방송을 시발점으로 지수의 인지도 와 명성은 더욱 폭발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세계적으로도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급기야 지수를 추앙하는 종교마저 생기기 시작했고 일부 종교에서는 지수를 성인(聖人)으로 추대해야 한다는 움직임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지수의 부모님들은 지수가 유명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일을 모두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들의 직함은 매니저로 바뀌어 있었다. 미디어에의 힘이었을까. 방송이 전파된 이후로 지수의 집 앞에는 매일 많은 사람이 지수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지수의 부모에겐 돈의 액수와 관계없이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는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가난에 허덕이던 지수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어린딸이 가난의 늪에서 자신들을 구제해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지수의 능력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였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지수 부모님의 판단은 맞았다. 만지면 모든 것이 변해버리는 마이다스의 손처럼 지수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치료능력은 부모들의 예상대로 엄청난 부를 가져다줬다. 더욱이 자본주의 사회에선 부가 곧 권력이자 힘이었기에 조금이라도 더 빠른 치료 순번을 받기 위해 소녀의 부모에게 뒷돈을 건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인사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연예인, 정치인, 스포츠 스타… 특정 분야를 막론하고 오직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 중 소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지수의 고객이었고 다른 말로는 부모의 두둑한 지갑이었다.
집은 넓어졌고 낡고 녹슨 차는 신형 외제 차로 바뀌었으며 몇백, 몇천씩 하는 옷과 장신구들을 걸쳐도 만족을 하지 못하고 항상 무언가 부족하다 느꼈다. 걸신이 걸린 것처럼 아무리 채워지고 채워져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전의 삶보다 물질적인 풍요는 이루었지만 마음만큼은 빈곤했다. 그럴수록 부모는 자신들의 허기짐을 달래기 위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바꾸고 또다시 바꾸었다.

문제는 돈은 유한적이고 인간의 욕심은 무한이라는데 있었다. 부모의 씀씀이에 비해 쌓이는 부의 속도는 현저히 따라오지 못했다. 결국, 부모는 더 쉽고 더 많이 더 빠르게 돈을 얻을 수 있는 건 바로 지수를 더욱더 쥐어짜는 방법이었다. 더 많은 황금알을 차지하기 위해 거위의 배를 가르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지수는 사람들을 치료할 때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했다. 자신이 능력을 사용하면 그에 수반하는 강한 통증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전달된다고 부모에게 말했다. 머리가 아픈 사람을 치유하면 지수 역시 머리가 강한 두통이 머리를 죄어왔으며 다리가 아픈 사람을 치유하면 다리가 저리고 쑤시며 아팠다.
그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받는 황금의 열매가 너무나도 달콤했기에 자신들의 딸이 고통받음에도 두 눈을 감아버렸다.
지수가 기댈곳은 없었다. 차선책으로 지수는 부모에게 한 사람을 치료한 후엔 최소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모 역시 딸이 치료하면서 아파하는 모습을 보았고 자신들의 가슴속에 미안한 감정을 상쇄하기 위해 지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주기는 시간일 지나고 부모의 주머니가 가벼워질수록 그 속도 또한 빨라졌다. 한 달, 3주, 일주일.. 조금씩 짧아지던 주기는 어느새 매일로 바뀌어 있었다. 주기가 짧아질수록 지수의 고통은 비례하여 커졌다. 지수의 손끝에서 사람들은 회복되어 갔지만, 다시 지수의 손끝을 통해 지수는 병들어 갔다. 자신의 치료 능력 때문에 본인이 병들어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지수의 집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전에 몇 달 치의 예약도 차 있고 치료 비용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고가이기에 치료를 받을 수 없었지만, 지수의 기적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신의 순번을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서 지수의 부모가 한 남성의 이름을 부르자 남성의 얼굴에 미소가 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윗옷을 훌렁 벗어 버렸다. 나이의 흔적이 새겨진 주름지고 탄력을 잃은 살가죽이 드러났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녀뻘인 지수 앞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 모습이 흡사 도마 위에 뉘어진 생선 같았다. 남성은 자신의 쭈글거리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가슴 밑을 가리켰다. 사내의 갈비뼈 마디가 드러나 있었다. 그는 자신은 폐암이라는 말을 소녀의 부모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수의 부모는 남성을 보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지수를 바라봤다.

“들었지. 딸? ”

부모의 질문에 지수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오늘따라 얘가 왜 말이 없지!”

무안해진 지수의 부모는 혼잣말을 빙자하여 지수를 나무랐다.

“에이. 뭐 이 나이 때 다 이렇죠. 아직 아이잖아요.”
“그렇죠?”
“뭐 치료만 잘 되면 되는 거죠.”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회장님.”

지수의 부모와 회장이라고 불린 사내는 재미있는 개그라도 본 듯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사내의 웃음기가 멈추자 가늘고 여린 손을 남성의 복부에 힘겹게 올려놓았다. 누가 치료를 받고 있는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활짝 웃고 있는 남성의 표정과 힘겨워하는 지수의 표정은 너무나도 대비되었다. 고요속에서 방안에 째깍 거리는 시계 초침만이 가득해졌다.

시계바늘 움직이며 10분이 지나고 다시 20분에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시계의 초침이 규칙적으로 넘어가면서 연신 째깍거렸다. 시곗바늘이 흘러갈수록 시간 역시 하염없이 흘러갔고 지수는 처음 자세에서 30분이 넘도록 남성에게 손을 댄 채로 멈추어 있었다. 지수의 부모는 단 한 번도 지수의 치료시간이 이토록 길어진 적을 본적이 없었다. 바닥에 누워있던 회장은 지루한 듯 지수의 부모에게 치료 종료 시각을 물어봤다. 회장의 질문에 지수의 부모 역시 궁금하긴 매한가지였다.

“딸. 얼마나 걸려요? 다 끝나가나요? 딸?”

부모의 물음에도 지수는 묵묵부답이었다. 부모는 자신들의 질문에 지수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부끄러운 듯 빨갛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어색함과 부끄러움을 상쇄하기 위해 어색한 웃음이 잠시 흘렀다. 몇 번의 반복된 질문에도 지수는 여전히 침묵했다.

“호호.. 어머…얘가.. 왜 말이 없지? ”

딸의 행동이 평소와 다름을 느낀 부모는 지수에게 다가가 가녀린 어깨를 살며시 흔들자 지수는 남성에게 손을 올려놓은 모습 그대로 온몸이 굳은 채 옆으로 쓰러졌다. 지수의 모습을 보고 놀란 부모와 회장의 비명과 절규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지수는 서둘러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병원에 도착하기 전 숨이 멎은 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세상의 모든 생명력을 치유할 수 있던 소녀가 정작 본인의 치료는 하지 못한 채 죽어버렸다.
지수의 사망 소식에 사람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수의 부모 역시 자신의 딸이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엎질러진 물은 되돌릴 수 없었다. 시체안치실에서 신원 확인을 위해 내려온 지수의 부모는 밝게 웃던 모습은 더는 찾아볼 수 없는 지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부모의 표정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데서 오는 상실감이 아닌 허무함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 팀장은 지수의 부모에게 다가갔다. 자신의 몸에 딱 맞게 재단한 옷은 새련 되어 보였고 살짝 광택이 나는 검은색의 옷감은 고급스러웠다. 검정 타이까지 차려입은 남성의 모습은 의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인지 낯선 남성의 등장에 지수의 부모님의 얼굴엔 긴장감이 서렸다. 김 팀장은 지수의 부모를 향해 가볍게 묵례를 한 뒤 명함 한 장을 꺼내 건넸다. 남성이 건넨 명함을 바라보니 김병철 팀장이라는 이름과 함께 ‘한국 생명공학 연구소’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어리둥절한 표정과 함께 이 명함을 왜 나에게 주느냐는 듯한 눈빛으로 지수의 부모가 바라보자 김 팀장은 자신이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을 이야기했다.

“지금 이런 말씀드릴 시기가 아닌듯하지만.. 따님의 시신을 저희 기관에 넘겨주셨으면 합니다.”

지수의 부모들은 김팀장의 말이 끝나자 찰라의 표정 변화가 스쳐 지나갔다. 확실한 건 분노의 표정은 아니었다. 부모의 표정을 빠르게 살핀 김 팀장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따님의 능력은 초능력에 가깝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놀라운 능력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사회적으로 엄청난 신드롬이 일어난 것이겠지요.”
“그래서요?”

침묵을 깨고 지수의 부모가 되물었다. 가라앉아있던 그들의 욕망이 수면으로 드러난 시점이었다. 본능적으로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란 걸 예감한 김 팀장은 잠시 호흡을 고른 후 다시 말을 이어갔다.

“물론 사체를 부검해봐야 알겠지만, 부모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따님께서 어떻게 그런 능력을 쓸 수 있었는지 연구소에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만약 그것이 밝히게 된다면 그 원리를 이용해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해서 너무나 상심이 크고 당황스럽겠지만..”

김팀장은 말을 잠시 멈춘 후 부모의 표정을 다시 한번 살폈다. 지수의 부모는 김 팀장의 다음 대답을 기다리는 듯 보였다. 김 팀장은 자신의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작은 봉투 하나를 꺼내 지수의 부모에게 건넸다.

“그래서 이건 약소하지만 준비한 작은 성의입니다.”

김 팀장이 건넨 봉투는 매가 사냥감을 낚아채듯 김 팀장의 손에서 부모의 손으로 옮겨갔다. 하얀 봉투의 입이 쩍 벌어지자 부모의 표정이 그제야 밝아졌다.

‘체크메이트’

김 팀장의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상황은 종료된거나 마찬가지였다. 봉투 안에 들어있던 돈을 확인한 후 부모는 김 팀장의 마음이 바뀔까 봐 서둘러 돈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말했다.

“저희 딸 아이가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저희 딸이 살아서도 그러더니 결국 죽어서까지 사람들을 치유하네요.”
“네.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저희 딸이 천사예요. 천사.”

김 팀장은 가식과 허영심으로 가득 찬 이들과 오랜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이보다 더한 일도 경험했지만 이런 일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 지지 않았다. 이미 잡은 물고기에겐 더 이상의 예의와 절차는 생략하고 빨리 결론으로 넘어가서 이 상황을 종료하고 싶었다.

“따님의 부검을 마친 후 장례는 저희 쪽에서 모두 준비하겠습니다. 장례 때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부모에게 말을 마친 김 팀장은 짧게 손짓하자 몇몇 남성이 추가로 들어와 지수의 사채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김 팀장은 다시 한번 지수의 부모에게 묵례한 후 그곳을 빠져나왔다. 김 팀장이 나가자 부모는 다시 한번 봉투를 열어보며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김 팀장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진 지수를 부검하기 위하며 많은 캠코더가 설치되었다. 지수의 부검은 의학계에선 최고의 관심사였다. 그렇기에 각 분야의 유명한 의사들은 모두 참관하여 지수의 부검을 지켜보았다.

“2016년 6월 21일 11시 52분 권지수양 부검을 시작하겠습니다.”

의사의 말과 함께 지수의 복부에 칼이 그어지고 세로로 선홍빛 줄이 그어졌고 의사는 벌어진 복부 틈 사이로 도구를 밀어넣고 완전히 지수의 복부를 개방하였다. 하지만 지수의 복부가 열리자 모여있던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수의 장기는 자신의 생명을 타인에게 모두 빼앗긴 듯 노파의 것처럼 나이가 들어있었고 쪼그라들어 있었으며 여러 가지의 각종 암과 종양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퍼져있었다.
마치 자신이 모든 병을 흡수한 것처럼 말이다. 워낙에 장기 손상이 심해 더 이상의 부검은 의미가 없었다.

“2016년 6월 21일 11시 54분 권지수양 부검을 종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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