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어요. 아빠.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거짓말같이 찾아오는 기적 같은 일들이 있다. 거듭된 우연이 일어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행운이 다가오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의 말에 의하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기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것, 다른 하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기적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분법적 선택지에서 내 삶은 오늘 이전까지는 주저 없이 전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삶을 반추해보면 기적이란 녀석의 그림자조차 만나지 못했다. 어린 시절에는 남들처럼 평범하게만 살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하던 나로선 신기루 같은 단어에 의지할 만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오늘 내가 겪은 일은 기적이라는 말 이외에는 어떠한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내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줄지에 대한 의문과 믿지 않으면 친구들과 갑론을박을 펼치고 싶지도 않았기에 이내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늘을 지나간다면 내 삶에선 기적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결국, 수없이 자문하며 내린 결론은 나 이외에 다른 누군가가 오늘의 일을 기억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기 위해선 인터넷 유명 커뮤니티에 글을 써서 올리는 것만큼 효과가 큰 것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 인터넷은 파급효과가 큰 만큼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공간이기에 그에 상응하는 반작용도 심했다. 악플과 함께 누군가는 조작이다, 관심병 걸린 환자라며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존재하겠지만 실제로 나에게 일어난 일이고 내가 믿는데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뭐 그리 중요한가 싶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론 오히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기에 내가 하는 말을 좀 더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믿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마저 생겼다.
그러나 마음과는 다르게 몇 시간 동안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음에도 많은 단어가 머릿속에서 부유물처럼 떠돌아 다닐 뿐 하나의 문장으로 탄생되지는 않았다. 무심하게도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곗바늘은 오늘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렸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오랜 고민끝에 키보드를 한 글자씩 꾹꾹 누르며 내 생각을 전달하자 점멸등처럼 제자리에서 깜빡거리던 커서가 기지개를 켜며 옆으로 움직였다. 하얀 백지 위에 검은 글자들이 한 글자씩 새겨지기 시작했다.

내가 오늘 말할 이야기는 바로 우리 아빠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유일한 가족이던 아빠를 잃었다.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자신의 선택으로 내 곁을 떠나가셨다. 사인은 자살. 거꾸로 하면 살자는 단어가 되어버려 본래 자신이 가진 단어의 의미와 정반대의 의미를 지니는 역설적인 단어이지만 아빠는 단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셨다. 인생의 마지막 엔딩으로 선택하신 게 바로 자살이었다. 그 덕분에 난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렸음에도 나는 아빠를 원망할 수 없었다. 아빠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딸이 더 고통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선택한 죽음이었지만 아빠의 선택은 큰 오판이었다. 병마가 아빠의 생명을 갉아먹는 걸 지켜보는 고통보단 부재로 인한 그리움이 더욱 컸기 때문이다. 아빠의 빈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날 만큼 나는 강인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가슴속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버린 것처럼 커다란 상실감이 매일같이 내 온몸을 훑고 다녔다. 사람이 이토록 많은 눈물을 쏟아 낼 수 있는지, 또 이토록 가슴이 저리고 아프면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친구들은 그런 내 모습에 시간이 지나면 점차 나아질 거라 했다.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기분전환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라는 조언도 같이 돌아왔다.
정말 괜찮아질까? 의문을 품으며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카페에 가서 커피를 시키고 음악을 듣기도 해봤지만, 노랫말 가사만 들어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빠와 닮은 사람을 보거나 다정한 부녀 사이를 목격하는 날에는 종일 슬픔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커피숍에서 하염없이 우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 사람들의 모습엔 사랑의 이별에 슬퍼하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보였는지 위로의 말을 건네는 사람들도 있었다. 명목만 놓고 보자면 이별이란 공통점은 맞았으니 그들의 위로가 완전히 틀린 거라곤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내가 슬퍼하는 이유를 사랑의 열병으로 치부해버리는 게 싫어 집 밖에 나가는 것도 며칠 가지 않고 이내 그만두었다.
집 안에서 미친 사람처럼 실없이 온종일 웃다가도 갑자기 찾아오는 슬픔의 눈물이 멈추지 않아 오열하다 탈진하길 부지기수였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눈을 뜨고 다시 눈을 감을 때까지 마셨다. 술을 마신다는 표현보단 알코올 속에 내가 잠긴다는 표현이 더 맞을 만큼 술을 들이부었다. 영화나 드라마의 비련의 주인공들이 우울하거나 슬프면 어김없이 찾는 게 담배였기에 나도 평소 담배 연기만 맡아도 질색할 만큼 싫어하던 담배의 도움을 받으면 조금은 나아질까 싶어 술도 채 깨지 않은 채 무작정 편의점으로 향했다.
눈에 보이는 슬리퍼를 대충 챙겨 신고 집 근처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자리에 앉아있던 아르바이트생이 내 쪽을 바라보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20대 초 정도의 얼굴에 보송보송한 솜털이 채 가시지 않은 어린 학생이었다. 난 그에게 좀비처럼 엉거주춤 다가갔다.

“담배 한 갑 주세요.”

아르바이트생은 내 말을 듣고 쭈뼛거렸다.

“담배 한 갑 달라니까요.”

나도 모르게 어린 아르바이트생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아르바이트생은 금방이라도 울 듯한 울상이 되어버렸다.

“저…. 어떤 담배를… 말씀하시는 건지..”
“아…. 그냥 아무거나요.”

평생 담배를 피워본 적 없던 내가 담배의 종류를 알 리 만무했다. 내가 담배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무작정 담배를 달라고 하자 아르바이트생이 당황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것도 모르고 짜증부터 냈으니 아르바이트생의 입장에선 억울할 만 했다. 영락없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격이었다. 아르바이트생은 담배에 바코드를 찍은 뒤 나에게 담배를 건넸다. 난 황급히 그가 건넨 담배를 낚아채곤 편의점을 나왔다. 문밖을 나가기 전 잠시 멈춰선 뒤 아르바이트생을 바라봤다. 어린 아르바이트생이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할까 싶어 잔뜩 긴장한 눈치였다.

“아까… 짜증 낸 거 미안해요. 나도 처음 사보는거라..”

변명같은 사과만을 편의점에 놓아둔 채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머리는 헝클어지고 너무 많이 울어 두 눈은 퉁퉁 부어있으며 신고 나간 슬리퍼는 모양도 다른 짝짝이 슬리퍼에다 입에선 술 냄새가 진동했다. 영락없는 미친 여자였다. 내 몰골을 보니 아르바이트생이 처음 내 모습을 보고 움찔한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메케한 담배 연기가 목젖을 타고 넘어가자 거친 기침이 터졌다.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멋들어지게 연기 속에 내 시름을 섞어 뿜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난 담배가 필터의 끝까지 타들어 갈 때까지 피고 또 피웠다. 마지막 담배까지 모두 피우고 희뿌연 담배 연기가 방안에 가득 메워질 만큼 담배를 피웠음에도 조금도 위로받지 못했다. 그래서 담배 피우는 건 그만두었다.
아빠를 향한 비통에 빠져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면 홀로 남겨진 내 모습이 너무나도 외롭고 무서워 다시 술을 마시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극단적으로 내가 죽으면 아빠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날 위해 잠드신 아빠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 같아 그것만큼은 하지 못했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아빠의 친척은 다 큰 딸년이 왜 이리 아비에게 집착하느냐며 내가 하는 행동으로 인해 아비의 영혼이 이승을 맘 편히 떠나지 못하게 막는다고 꾸짖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죽은 망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서라도 아빠를 다시 내 옆에 두고 싶었다.
나의 이런 행동이 누군가에겐 도저히 이해가 안 될 거라는 걸 나도 안다. 더욱이 이 상황이 기적이랑 무슨 상관이냐며 반문할지도 모른다. 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조금은 길 수도 있는 어린 시절의 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사실 그리 유쾌하지 않다. 엄마는 평소 약간의 정신병이 있으셨다. 문제는 아빠가 집에 없을 때 늘 술을 입에 달고 사셨다는 게 문제였다. 더욱이 당시 아빠의 직업 특성상 출장이 잦아 집에 없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엄마는 늘 술을 마셨다. 엄마에게 술이란 트리거와 같았다. 그건 주체할 수 없는 폭력성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짜증과 예민함만 많은 사람이었지만 술이 들어가면 예민한 지킬박사는 사라지고 난폭한 하이드가 나타났다. 폭력 앞엔 나도 예외일 수 없었다. 상식적인 부모의 훈육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더욱이 훈육이라는 건 부모가 자식의 지도편달을 위해 잘못된 점을 잡아주는 교정의 일부분인데 술에 취한 엄마는 자신이 마치 야구선수라도 되는 것마냥 손에 잡히는 모든 물건은 집어 던지기 일쑤였고 입에 담지 못할 육두문자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날은 운수가 좋은 날이었다. 가끔은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내가 투포환이 되어 날 집어 던지는 일도 왕왕 있었다.
성인이 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정신병이라고 일축해버렸지만, 당시의 엄마는 극심한 산후우울증과 알코올중독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그렇기에 지금은 같은 여자로서 조금은 이해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물론 아직 완벽히 이해가 되는 건 아니지만 사실 그 이유가 아니라면 스스로가 더 비참하고 슬플 것 같아 그냥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러나 그 시절에 왜 맞는지, 또 엄마가 왜 욕을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던 나로서는 잘못했다며 두 손이 닳도록 빌고 또 비는 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용서를 구걸하는 어린 시절의 내 손은 엄마의 매질을 막기에는 너무나도 작았다. 그런 매질은 술에 취해 잠들거나 자신의 직성이 풀릴 때까지 매질이 끝나야만 멈춰졌다.
폭력이 무서운 또 다른 점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데 있었다. 간혹 이웃 주민들이 엄마의 행동을 신고하여 경찰이 출동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린 딸을 교정한다는 명목하에 엄마의 행동은 당위성을 인정받았다. 공식적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제재가 사라지자 훈육을 빙자한 폭력은 더욱 거세졌다. 교정의 이유는 매일 매일 바뀌었다. 어떤 날은 음식을 먹는데 쩝쩝 소리를 내며 먹는다고 맞았고 어떤 날은 자신을 무시하며 쳐다본다고 맞았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엄마의 구타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빠가 어린 딸의 몸이 이상하다는 걸 발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쁜 마음으로 출장에서 돌아온 집에서 자신을 맞이하는 어린 딸의 모습에 아빠는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손바닥만한 몸에 온몸에 몽고점이 피어난 난 것처럼 푸릇푸릇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는 몸을 보자 날 꼭 끌어안은 채 아무 말씀도 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우셨다. 아빠의 앙다문 입에선 끅끅거리는 소리만 새어 나왔다.

다음날 아빠는 엄마와 나를 강제로 데리고 병원으로 향하셨다. 둘 다 치료라는 목적으로 병원을 찾았지만, 근본적 치료의 목적은 달랐다. 나는 육체적인 치료가 주였던 반면 엄마는 심적인 치료가 주가 되었다. 나와 달리 엄마는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무릇 어떠한 치료도 본인의 의지가 중요한 법인데 당시 엄마가 원한 건 아빠와의 이혼이지 치료가 아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이혼을 요구하게 된 원인은 남자였다. 결혼 하기 전 만나던 남자가 있었는데 아빠와 결혼을 하면서 남자와의 관계를 정리하였다 했다. 아빠 역시 그 말을 믿었다. 그러나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계기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엄마의 인생에서 다시 그 남자가 나타났다. 분명한 건 엄마는 자신의 남은 인생에서 아빠와 내가 아닌 그 남자를 원했다.
당시 아빠는 어떤 생각을 품고 사셨을까?
본인을 향한 사랑이 이미 멈춰버린 여자를 억지로 붙잡고 있는 남자.
엄마의 사랑이 끝나버린 어린 딸.
아빠는 자신의 행복보단 자라나는 어린 딸의 미래가 먼저 걱정되었을 것이다. 엄마의 빈자리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자라게 하고 싶지 않은 소망과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는 바람이 맞물려 버티신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미 머릿속에선 정답을 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하루하루를 세뇌하며 버틴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어린 딸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고통과 희생을 버틸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옛말에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의 대표주자를 꼽으라면 아마 엄마일 터였다. 아빠의 의중을 판단한 엄마는 플랜B를 준비하며 자신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준비를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준비해 나갔다. 아빠의 의심을 덜기 위해 최대한 협조적인 가정주부의 코스프레도 잊지 않았다. 아빠는 단순한 사람이었다. 어린 딸의 눈에도 엄마의 행동이 서툴고 어설퍼 보였음에도 아빠는 그걸 엄마가 변화를 위한 노력으로 판단하셨던 것 같았다. 이미 둘 사이의 사랑은 끝났지만, 한때 자신들이 사랑했던 사랑의 결과물인 딸의 엄마로서의 역할만 이행해도 아빠는 만족하는 것 같았다. 이것 역시 아빠의 오판이었다. 엄마의 태도 변화를 보고 아빠는 한동안 놓아두었던 일을 다시 매진하셨다.
슬픈 현실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돈을 벌어야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출장으로 1박 2일 부산을 다녀오겠다는 아빠를 배웅하던 엄마는 아빠의 뒷모습이 사라짐과 동시에 자신만의 연극무대에서 내려왔다. 숨겨두었던 커다란 가방을 꺼내 온 집안을 뒤지며 돈이 될만한 건 가방에 마구 밀어 넣었다. 엄마가 지나가 자리는 태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삽시간에 난장판으로 변했다.
난 광기 서린 엄마의 모습이 무서워 방 한구석에 등을 지고 웅크린 채 지켜봤다. 엄마는 인가로 내려와 먹이를 찾아 논밭을 헤집어 놓는 멧돼지 같았다. 가방 안이 불룩해지며 가득 차자 엄마는 가방을 끌고 집을 나섰다. 어미 오리를 뒤 따르는 새끼 오리처럼 엄마의 짐가방 뒤를 따라나섰다.
엄마는 자신을 따라오는 날 발견하곤 집안으로 다시 밀어 넣었다. 힘에 밀려 현관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아’ 하는 고통의 외침과 함께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시베리아보다 차가운 서늘함이 서린 눈빛만이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을 따라 나오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내가 자신을 따라 나오지 않는 것을 끝까지 확인하며 엄마는 문을 닫았다. 좁아지는 철문 사이로 끝까지 노려보는 엄마의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처럼 난장판이 된 거실과 그곳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난 무서웠다. 정확한 상황을 몰라도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사물들이 뿌옇게 흐려지더니 굵은 눈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게 시발점이었다. 무서운 감정만큼 더 큰 소리로 울고 또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두 눈이 부어 앞이 보이지도 않을 즈음 현관문이 열리면서 헐레벌떡 달려와 누군가 날 안아줬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안아주는 순간 아빠인지 알 수 있었다. 연신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과 목소리, 안아줄 때 몸에서 나는 아빠 냄새를 맡으니 무서움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마음도 차분하게 해줬다. 이웃 주민이 아이가 집에서 너무 오래 울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황급히 올라오셨다 했다. 아빠의 품에 있자 나는 빠르게 안정되어 갔지만 나와는 반대로 아빠의 몸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처음 내가 엄마에게 구타당한 모습을 발견한 이후 처음이셨다. 아빠가 집에 오면 전해주라며 던지고 간 엄마의 쪽지가 생각이 났다. 엄마의 마지막 서신이었다.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해진 종이쪽지를 아빠에게 건네자 공처럼 말려있던 종이를 아빠는 서서히 펼쳤다. 내가 건넨 종이처럼 쪽지를 읽어본 아빠의 얼굴 또한 종이처럼 구겨졌다. 아빠의 입에서 들릴듯 말듯한 욕설이 터져나왔다. 엄마가 건넨 마지막 쪽지에는 ‘찾지 마’ 라는 글자만이 적혀있었다.

그 날 이후 아빠와 단둘이 살게 되었다. 아빠는 엄마의 공백을 느끼지 못하도록 많이 노력하셨다.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며 남자 혼자의 힘으로 어린 딸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이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게 얼마나 위대하고 힘든 것인지 새삼스럽게 느낄 때면 아빠에 대한 사랑을 또 한 번 느꼈다. 아빠라는 존재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런데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걸 증명하듯 사춘기가 찾아오고 몸도 눈에 띄는 변화가 시작되자 아빠가 남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씩 불편해졌다. 속옷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아플 땐 극심한 생리통보단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더욱 컸다. 시간이 지나며 내 행동으로 인해 아빠에게 미안함이 커질수록 이상하게도 거리감 역시 점점 커졌다. 그런 내 모습 때문이었을까? 술도 잘 드시지 못하시는 아빠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들어오셨다. 아빠가 술을 드신 게 괜스레 내 책임인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다행히 콧노래도 흥얼거리시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 보여 안심이 되었다.

“잘 드시지도 못하는 술을 왜 이리 많이 드셨어?”

걱정과 투정으로 입을 삐쭉거리며 말했다. 아빠는 오랜만에 먼저 말은 건 딸이 반가운 듯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사랑하는 우리 딸. 아빠 걱정하는 거야?”
“그럼 당연히 걱정하지.”

걱정을 핑계 삼아 내 마음을 전했다. 그런 의도를 아는듯 아빠는 빙긋 웃었다.

“아빠는 괜찮아. 오늘 아빠가 보여줄 깜짝 선물이 있지. 보면 놀랄걸?”

술을 먹은 탓에 어눌한 발음으로 말씀하셨지만 목소리만큼은 무언가를 빨리 자랑하시고 싶은 눈치셨다. 학교에서 상장을 받고 집으로 달려와 부모에게 제일 먼저 자랑하고 싶은 아이처럼 아빠의 눈은 반짝거렸다. 어떤 선물일까 내심 기대하면서도 내심 무심한 척 행동했다. 나는 아빠의 손에 이끌려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한껏 들뜬 목소리로 아빠가 내게 보여준 건 아무 내용도 없는 빈 블로그였다. 도통 무슨 상황인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이게 왜 깜짝 선물인지 이해할 수 없어 멀뚱거리며 아빠를 바라보자 내 표정에 드러난 속내를 읽으시곤 자랑스러운 표정을 짐짓 지으시며 말했다.

“멋있지? 이거 아빠가 친구한테 거하게 술까지 사면서 힘들게 만든 거야.”

사실 아빠의 기대와는 달리 실망이었다. 이런 간단한 걸 만드는데 친구분에게 술까지 사주면서 만들 가치가 있는지도 의문도 들었다. 결국, 내 말투엔 여과 없이 불평이 드러났다.

“이런 건 나한테 해달라고 하시지. 클릭 몇 번이면 금방 만드는데…”
“우리 딸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어서 그랬지.”
“뭘 놀라게 해?”

내 말에 잠시 말을 멈춘 아빠는 공연히 헛기침한 후 마음의 준비를 한 듯 다시 말을 이어갔다.

“요즘 사춘기라 아빠랑 있는 게 만이 불편했지? 이럴 땐 아빠보다 엄마가 필요한데..” 의표를 찌르는 아빠의 말에 속마음을 들킨 것만 같아 얼굴이 당근처럼 달아올랐다. 그런 내 모습에도 아빠는 표정에는 나에 대한 서운함이나 속상한 마음은 느낄 수 없이 사랑만이 가득했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서툴러. 미안해”
“아냐”

미안한 마음과 소리가 점점 줄어 들어가며 대답했다.

“이제 우리 여기다가 대화하자.”
“무슨….대화”
“어떤 이야기든.. 아빠한테 부끄러워서 직접 말하기 힘든 이야기나 고민거리, 남자친구 이야기 등…. 그냥 전부다…. 아빠가 우리 딸에게 주의해줘야 하는 거라든지 어떤 거라도 좋아.”

목구멍이 갑갑해지고 울컥거렸다. 눈가도 젖자 황급히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그게… 모야. 유치하게.”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려 괜스레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건 덤이었다.

“유치하면 어때? 이제 이 공간은 사랑하는 우리 딸과 아빠의 비밀 아지트 같은 거로 생각하면 되잖아. 아빠가 더 노력할게. 그러니까….”

아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빠의 넓은 가슴에 안겨 참았던 눈물을 펑펑 쏟았다. 오랜만에 아빠의 냄새가 느껴졌다. 어린 시절 이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 나에겐 엄마가 없지만, 아빠가 두 명 이상의 사랑을 주는구나.’

감히 사랑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난 아빠에게 수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걸 잠시나마 망각하고 투정 부리며 멀리했던 나 자신이 못나 보였다. 컴퓨터 타자도 독수리타법으로 겨우 치시는 아빠가 블로그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힘들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직 나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한 행동이기에 더 많은 눈물이 쏟아졌다.
이후 블로그는 아빠와 나의 소통 창구였다. 속상한 일이 있거나, 또는 서로 말하기 쑥스러울 때 우린 어김없이 블로그에 서로의 마음을 옮겨 적었다. 주로 내가 글을 남기면 아빠는 글을 읽고 답장하는 형식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블로그의 글이 하나씩 늘어날수록 우리 가족의 추억이 하나씩 쌓이는 것 같아서 내심 기분이 좋았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사용성도 편리한 많은 SNS 메신저도 나왔지만, 여전히 우린 사소한 것까지 블로그를 통해 대화했다. 즉문즉답으로 대화가 이루어지는 메신저보다는 편지처럼 한 글자씩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타이핑하고 읽어보는 설렘이 더 좋았다.
그렇게 아빠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나를 지켜주는 커다란 울타리였고 모진 바람과 풍파를 막아주는 버팀목이었다. 삶이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쉼터였으며 때론 깊은 고민을 털어놓는 대나무 숲과 같은 존재였다.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게 된다면 꼭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소망했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였고 아빠만큼 멋진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맑은 날만 지속할 수 없고 고통과 행복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결선과 같다는 걸 신은 불시에 나에게 알렸다. 어느날부터 아빠는 음식을 드시면 소화를 잘 하지 못했다. 여느 부모님들이 그러하듯 누차 병원에 가자고 권유해도 이 나이쯤 되면 누구나 조금씩 신체의 기능이 떨어지기 마련이니 유난 떨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나 역시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 게 나의 커다란 실수였다. 지금 생각하면 아빠는 나에게 이 세상 둘도 없는 최고의 아빠였는데 나는 아빠에게 너무나 못된 딸이었다.
며칠을 소화불량으로 고생하시던 아빠는 급기야 모든 음식을 다시 구토로 쏟아내셨다. 피가 섞인 토혈이었다. 더욱이 가슴이 죄어오는 강한 통증을 느낀다며 난생처음 아프다는 말씀을 하셨다. 황급히 119를 부르고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했다. 환자복 사이로 드러난 앙상한 팔과 다리는 어린 시절 슈퍼맨이라고 생각한 것과는 상이했다. 나만 행복했던 것 같아 커다란 죄책감이 밀려왔다. 나뭇가지처럼 피를 뽑고 커다란 기계에 아빠를 넣고 사진 촬영을 하고 다시 피를 뽑으며 많은 검사를 했다. 검사만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병을 치료하기 이전에 검사하다 쓰러지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때쯤 의사가 나와 아빠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였다.
의사의 간택을 기다리는 것처럼 병실 문 앞에는 많은 사람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를 받고 의사의 방문을 열자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가르마를 왼쪽으로 살짝 넘긴 30대 초반의 젊은 의사가 앉아있었다. 감정이 없는듯한 찬기의 소유자였다. 그가 풍기는 기운이 짐짓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저 젊은 의사가 우리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권력자였기에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를 보더니 자신의 앞에 놓인 의자를 손짓으로 가리켰다. 우린 그의 마리오네트가 된 것처럼 그의 지시에 따라 의자에 앉았다. 우리가 마주 앉은 뒤에도 검정 뿔테의 의사는 한동안 모니터 화면과 차트만을 바라봤다. 그는 사각거리며 무성의하게 넘기던 차트를 책상에 내려놓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의사와 눈이 마주치자 덩달아 긴장한 채 마른 침을 삼키며 그의 입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젊은 의사의 입에 아빠의 운명이 결정된다. 현실이 판사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 같았다. 고요한 침묵이 몇 초간 이어졌다. 적막을 뚫고 의사가 입을 열었다.

“아버님은 현재 위암 말기입니다. 현재 전이가 다른 곳으로 너무 많이 돼서 손을 쓸 수 없어요.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무미건조한 말투로 사무적으로 자신의 할 말을 전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의사 놈이 결국 아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이 유행하는 우스운 농담 같았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는데 준비를 하라니 도대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인지 따져 묻고 싶었다. 준비라는 게 가능한 것인지도 알고 싶었다. 집에서 기르는 개가 죽어도 우울하고 슬픈 감정이 며칠, 몇 달을 맴도는데 세상 그 무엇을 준다 하여도 바꾸지 않을 아빠가 죽는다는데 준비를 하라는 게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말처럼 들렸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번에도 정적을 먼저 깬 건 젊은 의사 놈이었다. 아무래도 저 의사는 조용한 건 조금도 못 참는 성격인 듯 보였다.

“가족분께서 환자의 치료를 굳이 원하신다면 저희가 시도해볼 수 있는 건 항암치료입니다. 하지만 기대는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지금 상황에선 큰 의미는 없습니다.”
“큰 의미가 없다는게..무슨 말이에요?”

마지막 희망마저도 확인 사살하는 의사가 내겐 소시오패스처럼 보였다. 인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에게 반문하며 물었다. 마치 예상했다는 듯 의사는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말 그대로입니다. 그래도 치료를 원하신다면 밖에 나가서 입원 절차를 받으시면 됩니다.”

그에겐 사람 목숨은 자신의 생계수단의 일부분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쌓였던 울분이 도화선이 되어 머릿속에서 맴돌던 분노가 터져 나왔다. 소리를 지르며 저주를 퍼부었다.

“당신이 의사야? 의사면 우리 아빠 살려내. 마음의 준비니 큰 의미가 없다느니 같은 개소리 하지 말고. 살려내란 말이야.”

어찌 보면 진작 병원에 데려오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자책과 후회에 대한 원망을 그에게 대신 탓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난동을 피운 죄로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병원을 끌려 나와야만 했다. 아빠는 그런 나를 위로했다. 정작 위로와 부축을 받아야 하는 건 아빠인데 난 또 철없이 아빠의 위로를 받으며 병원을 나왔다. 나에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던 아빠였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왜 그렇게 인색하셨는지 아빠는 그 흔한 암보험 하나 없었다. 그런 사실이 더욱 비참하고 화가 났다.

“아빠. 이 병원 말고 다른 병원도 알아보고 우리 치료받자.”
“됐어. 돈도 많이 들고. 의사도 가망 없다잖아.”
“그렇다고 이렇게 손 놓고 있어? 그리고 여기 병원이 이상한 거야. 저 의사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이번에는 저런 돌팔이 의사말고.. 재대로 된 병원 다시 알아보자. 돈이야 어떻게든 빌리면 되고….”

아빠는 끈질긴 내 설득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본인의 주장을 고수하셨다. 자신이 치료를 받는다 하여 완치되는 것도 아니고 반송장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자고 돈을 쓰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조차 돈을 아끼려는 아빠의 모습에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짜증 섞인 울분을 토해냈다.

“나중에 너 시집갈 때 써야지.”

죽음 앞에서도 아빠는 오직 내 걱정뿐이었다. 오늘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울지 않으려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만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난 여전히 울보였다.

“내가 그 돈으로 결혼하면 마음이 편할 거 같아? 왜 아빠는 아빠만 생각해.”
“괜찮아. 아빠 진짜 안 아파.”
“의사가 아빠 몸 안 전부가 다 암 덩어리라는데 뭐가 괜찮아?”

아빠의 두 손이 내 손을 맞잡았다. 손을 통해 아빠의 따뜻함이 전해졌다.

“우리 딸에게 내가 아파서 힘든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우리 딸이 힘들어하고 아파 할 모습은 더 볼 자신이 없고.. 우리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서로에게 화내지 말고 좋은 기억만 남기자. 아빠 말 무슨 말인지 알지?”

끝내 고집을 꺾지 않으셨던 아빠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던 그 놈이 처방해준 진통제만 드시며 버티시다가 더 버틸 수 없는 몸의 한계점이 오자 의식이 남아있을 때 자살하셨다. 나에게 미안하다며 짧게 쓰인 유서와 결혼자금을 틈틈이 모아두신 통장 하나가 유품의 전부였다. 입금자명에 아빠가 저금할 때마다 입력한 ‘사랑하는 내 딸 결혼자금’ 이란 문구가 가슴을 후벼팠다.
어떻게 장례를 치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악몽 같았다. 아주 지독히도 기분 나쁜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술에서 깨어나면 여지없이 아빠의 따뜻한 사랑에 목말라하는 내 모습뿐이었다. 커져만 가는 그리움을 아빠와 내가 항상 이야기하던 블로그에다 적어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아빠와 나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는 블로그였지만 혹여 누군가 보는 게 싫어 비공개로 아빠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다시 만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수많은 말들을 하나씩 꺼내 써 내려갔다.
왜 그렇게 날 놔두고 빨리 갔냐는 원망부터 그곳은 어떻냐는 안부까지..남들이 보면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매일 같이 블로그에 편지를 쓰다 보니 아빠가 내 곁에 없는 것이 아니라 잠시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위안이 되었다.
이제는 하나의 의식처럼 되어버린 아빠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오늘도 컴퓨터를 켰다. 평소보다 오늘은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전원이 켜지면서 윙 소리와 함께 모니터에 전원이 들어오고 인터넷 창에 능숙하게 주소를 타이핑했다. 익숙한 블로그 화면이 모니터에 비쳤다. 순간 너무나도 놀랐다. 이전에 내가 썼던 편지에 오늘 날짜로 답글이 하나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부터는 모든 글을 비공개로 작성했기 때문에 외부에서 내 글을 읽는 건 불가능했다.
그럼 누구일까? 내 아이디가 혹시 해킹된 걸까?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나에게만큼은 심각한 문제였기에 한참 동안 답글을 누르지 못한 채 망설였다. 결국, 고민 끝에 지훈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헤어졌지만 대학교 시절 잠시 사귀던 지훈선배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선 컴퓨터를 가장 잘 하는 사람이었다. 내 전화를 받은 지훈선배는 당황하는 것 같았지만 이내 내가 전화를 건 이유와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니 내 상황을 이해해주었다. 최대한 빨리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선배가 집에 오기까지 흘러가는 시간이 억겁의 시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어디쯤 오는 중인지 선배에게 전화하려던 찰라에 초인종이 울렸다. 선배였다. 몇 년 만에 지훈 선배와 멋쩍은 인사를 나눴다. 지훈 선배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며 미리 준비해 온 USB를 통해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코드들이 빠르게 지났갔다. 그런 행동들을 몇 차례 반복하던 선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도 모르게 초조한 마음이 들어 연거푸 손톱만 물어뜯었다.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다보던 선배는 고개를 돌려 의문을 가득 품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혹시 오늘 밖에 나간 적 있어?”
“아니 없는데 왜?”
“잠깐이라도? 아니면 네가 모르게 집에 올 사람이나”
“오늘은 종일 내가 집에 있었는데.. 그리고 요즘은 집 밖을 잘 안 나가기도 하고…”
“아.. 그래….그럼 진짜 이상하네.”
“왜 그러는데?”
“이 답글이 달린 날짜가 오늘이잖아.”
“응. 그런데?”
“그런데 이 글이 써진 IP가 여기야. 바로 이 컴퓨터에서 써진 거라고.”

선배의 말은 답글을 작성한 컴퓨터가 바로 내 컴퓨터라 했다. 또 자신이 살펴본 답글의 내용으로 보아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치부할 내용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선배는 네가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게 좋겠다며 일이 마무리되고 다음에 지나간 회포를 풀기로 약속한 뒤 헤어졌다.
나는 답글을 단 적이 없는데 그럼 도대체 누가 글을 달았단 말인가? 의문을 품고 나는 조심스럽게 답글을 눌렀다. 그리고 답글을 본 순간 난 또 바보처럼 하염없이 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컴퓨터에 달린 답글의 내용 전문과 오늘 일을 나 외에 많은 사람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마지막으로 적은 후 길었던 글에 마침표를 찍었다. 길었던 마라톤의 결승점을 통과한 것처럼 온몸에 힘이 빠졌다. 글을 등록한 후에도 한참을 더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읽었던 글이지만 나는 오늘이 지나기 전 다시 한번 더 답글을 읽어 내려갔다.

[ 사랑하는 내 딸. 아빠도 네가 너무 많이 보고 싶구나.
더 오랜 시간 우리 딸과 함께하며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었는데 미안해. 가장 미안한 건 우리 딸 결혼할 때 아빠가 손잡고 같이 못 들어가서 너무나 미안해. 우리 딸이 데려온 사위에게 소주 한잔 따라주며 내 딸에게 잘해주라고 나도 너무 소중해서 사랑으로만 키운 딸이니까 나보다 더 많이 사랑해 주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못하게 되었구나. 대신 아빠가 더 높은 곳에서 우리 딸에게 어울리는 멋진 남자가 있는지 열심히 찾아볼게.
그러니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 딸. 이제 아빠 때문에 그만 슬퍼하고 좋은 인연이 다가오면 그 사람과 행복하게 살면서 아이도 낳고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그럼 아빠도 여기서 많이 기쁠 것 같아. 이제는 술도 조금만 마시고 지금처럼 아빠 때문에 너무 많이 힘들어하지 말고 좀 더 씩씩하게 지내.

아빠가 없다고 너무 늦게 다니지 말고 밥도 잘 챙겨 먹어. 매일 울고 있는 우리 딸 모습 보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아빠가 너무 마음이 아파. 사랑하는 우리 딸은 항상 좋은 것도 많이 보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항상 웃었으면 좋겠어. 아빠가 어릴 때부터 쭉 봐와서 아는데 우리 딸은 웃는 모습이 가장 예뻐.

널 한 번만 다시 안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많이 보고 싶구나. 내 딸.
너무나 많이 사랑한다. ]

몇 번을 읽으면서 글에서 아빠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기에 설령 오늘의 일을 아무도 믿지 않더라도 아빠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찾아와 쓴 글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너무 걱정돼서 마지막으로 찾아와 선물을 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시곗바늘은 이제 막 12시를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아빠의 49재 마지막 날도 몇 분 뒤면 끝났다.

이제부터 더는 울지 않고 정말 많이 웃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았다.
아빠가 내가 웃는 모습이 가장 이쁘다고 했으니까…. 책상 위에 놓여있는 사진을 바라보았다. 아빠는 사진 속에서 환하게 날 보며 웃고 있었다. 사진을 보며 나도 오랜만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빠. 나도 정말 많이 사랑해. 다음에도 꼭 아빠 딸로 태어날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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