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죽인 사람은 과연 누굴까

나는 창녀다. 아니 사람들이 나를 창녀라고 부른다.
창녀라는 말을 국어사전에 검색해보면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라고 정의되어 있다. 난 누군가에게 매음을 한 적은 당연히 없고 더욱이 추업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 나를 보는 모든 사람이 날 매춘부로 전추시켰다.
얼토당토 않은 말에 박론하며 상황의 전, 후 사정을 설명하였지만, 그것도 그때뿐이었고 더욱이 그런 질문을 가장한 비난을 하루에도 백번, 천 번 반복하다 보면 같은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앵무새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람들조차 나에게 낙인을 찍으며 손가락질을 해대는 세상. 나는 지금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만약 세상에 단 세 명의 사람만이 살고 있고 그 세 명 중 두 명이 태어나서 처음 본 코끼리를 보고 저 동물은 원숭이라고 주장한다면 남은 한 명의 사람에겐 그건 원숭이일까? 코끼리일까? 때론 진실도 다수가 동의하지 않으면 거짓이 된다.
나는 긴 코와 커다란 귀를 펄럭이며 걸어 다녀도 사람들 눈에는 여전히 원숭이였다. 한 번도 내가 원한 적 없었음에도 세상이 변한 것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 하지만 나에게는 조금의 변화도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일상의 아침이었다. 초등학생인 아들을 잠에서 깨우고 간단히 준비한 아침을 남편과 아들에게 먹인 뒤 남편의 출근까지 확인하곤 2차 전쟁이 시작된다. 워킹맘으로 살고 있었지만 일과 육아 어느 것 하나 포기하고 싶지 않은 욕심이 있었다. 특히 직장을 다니다 보니 다른 엄마들과 다르게 상대적으로 아들에게 신경을 못 써줄 때가 많았기에 아들의 등교만큼은 꼭 책임지고 싶었다. 사람들은 이런 내 모습을 보곤 다들 혀를 내두르며 같은 워킹맘들은 자신들은 퇴근하면 쓰러지기 바쁜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되묻기 일쑤 였다. 그럴 때면 나는 가볍게 웃으며 “뭐 남들도 다 하는걸요.”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들은 내 대답을 들으면 백이면 백 나를 향해 존경스럽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들의 눈빛이 나에게는 훈장과도 같았기에 싫지 않았다.
오늘 역시 초등학교에 아들을 내려준 후 회사로 방향을 틀었다. 회사로 들어가기 전 하루의 의식처럼 마시는 커피를 구매하기 위해 커피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이른 아침임에도 많은 사람이 커피를 구매하기 위해 북적였다. 기분 좋은 커피향이 몸속 깊숙이 들어왔다.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점원에게 다가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하자 점원은 연신 내 얼굴을 힐끔거리며 허둥댔다. ‘내가 무서운 얼굴인가?’ 싶은 생각을 잠시 했을 때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뜨거운 커피가 나왔다.
점원은 다시 한번 내 얼굴을 쳐다보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나는 자신의 업무에 프로답지 못하는 사람이 싫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화를 내고 싶지도 않았고 더 지체할 시간도 없었기에 액땜했다고 생각하며 뜨거운 커피를 낚아채듯 건네받은 뒤 나왔다.
회사에 들어서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그들은 마치 외계인이라도 마주한 듯 동공이 커지며 자신들끼리 소곤거렸다. 기분 나쁜 웅성거림이 호수의 파동처럼 퍼졌다. 사람을 앞에 세워놓고 수군거리는 행동이 상당히 모욕적으로 느껴졌다.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그들을 향해 쏘아붙이자 좌우로 흔들리던 시계추가 갑자기 멈춰버리듯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적으로 돌아왔다. 어제까지 자신들의 상급자인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첨을 해대던 무리의 교활한 시선이 하루아침에 차디찬 칼날로 변해 날카롭게 박혔다. 구밀복검 한 자들이었다.
이곳에 경력직으로 이직하여 많은 정치싸움에 휘말리면서 여러 사람이 떠났고 빈자리는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졌다. 양두구육스러운 인물들의 틈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으며 팀장으로 올라서기까지 8년이란 시간을 쏟아부으며 살아남았다. 그런데도 이 정도의 이질감과 불편함은 없었다.
수치심에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사람들의 낯짝은 히죽거렸다. 모욕감을 느끼며 그들을 지나쳐서 내 방으로 돌아왔다. 팀원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팀장인 자신을 보고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시큰둥했다.

“오늘 무슨 서프라이즈에요? 내 생일도 아닌데 다들 왜 그래?”

분위기를 전화하기 위해 약간의 농담섞인 질문에도 이번 역시 사람들의 선택은 침묵이었다. 아마 내가 없을 때 모두 접착제로 입을 봉한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손에 쥔 가방과 커피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사람들이 저러는 이유가 뭘까?’ 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도 있는 상사를 이렇게 무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 머릿속을 스치며 저들의 태도가 짐작이 가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얼마 전 사업 확장으로 인해 각 팀의 팀장 중 팀장들을 관리할 총괄팀장을 뽑는다는 공문이 내려왔는데 그 중심에 내가 있었다. 회사의 창립 멤버인 김 부장, 성골은 아니지만, 외부에서부터 실력을 인정받아 빠르게 부장으로 승진한 정부장, 그리고 해외에서 사장이 직접 스카우트 한 최 부장이 권력 싸움의 중심이었는데 나는 최 부장 라인이었다. 세 명의 부장이 지지하는 팀장 중 한 명이 총괄팀장이 되는 상황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은 어느 라인에 줄을 서야 하는지 계산하며 사내 정치를 했다. 최종 발표가 확정되기 전까진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태도는 단 하나였다. 신임 총괄팀장이 결정된 것이다. 설령 내가 총괄팀장에 임명되지 않더라도 팀원들까지 나를 무시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내가 신임 총괄팀장에 임명된 것이고 내부적으로 총괄팀장 승진이 확정된 거라면 두 명의 팀장 라인에 서 있던 사람들과 다시 새롭게 판을 그려야 하는 신규의 사람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새로운 보스를 모셔야 하는 사람들의 당혹감까지 생각하자 회사에 들어섰을 때 사람들의 반응도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아마 팀원들은 반응은 깜짝 발표를 위한 이벤트라 판단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오전에 느낀 불쾌감은 쉽사리 가라 않지 않았기에 이번기 회에 다시는 이런 기분 나쁜 서프라이즈는 하지 말라고 일러둘 터였다. 확인을 위해 권 대리를 불렀다. 권 대리는 내 호명에 깜짝 놀라며 쭈뼛거렸다.

“권 대리 도대체 뭐야? 내가 생각하는 게 맞아?”
“저… 그게….아 어떡하지..”
“뭔데? 괜찮아. 미리 알고 있어도 괜찮잖아. 놀라는 척은 할 테니까. 응?”
“그게요.. 아.. 미치겠네.”

안절부절못하는 권 대리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귀엽다고 느껴졌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던 권 대리는 얼굴에 비장함까지 보이며 마음의 결정을 한 듯 나를 바라봤다. 나 역시 회사생활을 하며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팀장님. 저도 오늘 받았는데요. 지금 회사 사람들 모두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뭐를?”
“어차피 팀장님도 아시긴 해야 하니까..”

권대리는 말을 마친 뒤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몇 번의 클릭이 끝나자 내 핸드폰이 진동하며 새로운 메시지가 왔음을 알렸다.

“제가 팀장님 핸드폰으로 보냈으니까 직접보세요.”

권 대리는 가볍게 묵례를 한 뒤 내 방을 나갔다. 그냥 말하면 될 걸 굳이 핸드폰으로 보내는 권 대리가 한편으론 미련하다고 생각하며 전송해 준 메시지를 열었다. 메시지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이 인터넷 주소만 덩그러니 적혀있었다. 주소를 클릭하자 인터넷 창이 열렸고 환하게 웃고 있는 나와 남편, 그리고 아들의 모습까지 작년 우리 가족이 경포대 앞바다에 놀러 가 찍은 가족사진이 나타났다.

“이건 우리 가족 사진이잖아? 이게 왜 인터넷에 있는 거지?”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등줄기에 퍼졌다. 핸드폰 화면의 스크롤을 내리자 ‘초등학생과 성관계를 맺은 위기의 워킹맘’ 이란 자극적인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웃집 초등학생과 성관계를 했다는 주부의 기사 링크가 첨부되어 있었고 기사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첨언도 잊지 않았다.
심장이 귓가에까지 들릴 정도로 쿵쾅거리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호흡은 거칠어졌으며 현기증이 날 정도로 어지러웠다. 화면을 보면서도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머리에 총을 맞은 것처럼 사고 회로가 정지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만 한다. 긴 호흡을 내쉬며 몇 번의 숨을 고르고 떨리는 손으로 다시 천천히 스크롤을 내렸다. 작가의 상상력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꽤나 상세한 스토리와 함께 가끔 아들을 데려다주며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아들 친구의 사진도 보였다. 댓글은 이미 입에 담을 수 없는 무차별적인 욕설과 나에 관련된 정보라면 머리털의 개수까지 실시간으로 공개되고 있었다.
피가 역류한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이제야 커피숍의 직원이 나를 보고 당황한 것부터 회사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송곳 같은 시선들의 의미가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연결되었다. 수많은 생각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감정의 교차 속에 손에 쥔 핸드폰이 울었다. ‘사랑하는 내 반쪽’이란 문구가 보였다. 남편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의지하고 헤쳐나갈 사람은 바로 남편뿐이었다. 내 말을 믿어줄 사람들부터 진실을 말하고 이 상황을 수습해 나가자고 판단이 섰다. 그러나 남편에게 안절부절못하며 당황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호흡을 가다듬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응.자기야!”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태연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남편의 목소리는 격양되어 있었다.

“너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카랑카랑한 쇳소리 같은 남편의 목소리가 넘어왔다. 남편의 회사에서도 분명 내 이야기가 남편에게까지 전달된 것 같았다.

“자기야. 이거 다 오해야. 나 알잖아. 이게 말이 돼?”
“그럼 이거 뭔데? 왜 우리 가족 사진이랑 그것도 동네에서 매일 보는 아들 친구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 그리고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네 정보를 다 알고 있는 거야?”
“나도 거기까진 모르겠어. 근데 자기야. 나 진짜 아니야. 자기는 날 믿어야 해”
“믿으라고? 며칠 전 그 꼬마도 집에 온 이유도 설마 그거냐?”
“무슨 소리야. 그건 조만간 민수 생일이니까 같이 잘 지내라고…”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어느새 나는 목소리가 잠겨 울먹거리고 있었고 남편은 더욱더 나를 몰아붙이며 쏘아댔다.

“사실 이제 네 말도 잘 못 믿겠다. 솔직히 정상적인 남자도 아니고 내가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쪽팔려서 어떻게 사냐? 넌 내 생각은 조금이라도 해봤냐?”
“자기야. 나도 왜 이렇게 됐는지 몰라.”
“네가 모르면 누가 아냐? 더럽다.”
“자기야. 정말 그게 아니…”

속사포 랩처럼 나를 몰아붙이며 내 말은 조금도 들어주지 않고 자신의 할 말만 하며 내 걱정보단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부터 걱정하는 남편이 정말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동일 인물이 맞나 싶었다. 평소와 너무 다른 모습을 보니 남편이 무서워졌다. 세상에 덩그러니 홀로 떨어진 것만 같은 공허감마저 들었다. 마음을 진정하고 다시 전화했을 땐 이미 전화기 전원은 꺼진 상태였다. 원래 믿는 도끼에 찍히면 더 아픈 법이다. 지금 이 순간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며 같이 가시덤불을 헤쳐 나가야 하는 사람이 반려자인데 그 사람의 눈에 이미 난 창녀였다.
울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만큼은 울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밀고 나오는 눈물을 막기에는 억울함과 설움이 더 컸다. 울음소리는 직장 동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기폭제가 되었고 그들은 내가 흘린 눈물을 시발점으로 자신들의 상상속에서 맴돌던 말들을 입 밖으로, 메신저로 쏟아냈다.
나에 관한 이야기는 ‘맞을 것 같다.’에서 ‘맞는 것 같다.’로 변했고 다시 ‘맞다’로 이야기는 확정되었다. 해명을 해도 그들에겐 구차한 변경일뿐이었다. 그리고 그 날 오후 회사는 품위유지 위반이라는 항목을 나열하며 나는 권고사직을 당했다. 도망치듯 작은 상자 하나에 개인 짐을 챙겨 나왔다. 몸이 아플 때도 참고 나가며 찬란했던 청춘과 맞바꾼 팀장이란 이름은 공중누각처럼 사라졌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는지 허탈하고 허무했다. 카지노에서 모든 것을 잃고 나온 도박자의 심정이 이러할까? 아니 그래도 이것보단 나을것이다. 도박자는 자신의 의지대로 게임이라도 했지만 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청춘에 대한 보상을 잃었으니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모르는 사람에게 17번의 삿대질과 8번의 욕설을 들었다. 중년의 한 남자를 나를 보고 더럽다고 말하며 침을 뱉었다. 좋은 일이 가득할 것만 같았던 오늘은 머피의 법칙처럼 내 생에 잊을 수 없는 시련을 선물한 하루였다.
어떻게 집에 도착했는지도 모르게 집 앞에 도착한 나는 힘겹게 도어락의 버튼을 누른 후 집 안으로 들어섰다. 남편의 옷과 아들의 짐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남편에게 전화했지만, 여전히 남편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사실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지금은 남편과 대화할 기운조차 없었다. 이 순간만큼은 오직 나만을 생각해야 했다.
이미 핸드폰은 불특정 다수가 오직 나라는 사람 한 명을 향해 난도질했다.

‘네 자식 같은 애랑 하니까 좋냐?’
‘섹스에 미친 더러운 화냥년’

처음 몇 개는 확인했는데 더 보고 있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 저 핸드폰을 끄지 않으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아 핸드폰 배터리를 분리했다. 액정이 꺼지고 검은 핸드폰 화면에 내 얼굴이 비쳤다. 핸드폰의 화면처럼 내 인생도 짙은 암흑이 드리운 것 같았다. 부정하고 분노했으며 이제는 수용의 단계였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다. 시간을 돌릴 순 없었다. 지금은 세상이 나를 믿어주지 않더라도 반드시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있다. 내가 당당하다면 당연히 이 일을 교정해야만 하는 게 맞았다.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라는 희망을 품고 경찰서에 사건을 접수했다. 나랑 상관없는 사건에 내 개인정보가 돌고 있으며 신변의 위협까지 받고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다 했다. 송두리째 망가진 내 삶을 다시 돌려달라고 부탁했다. 아니 신에게 소원을 빌듯 경찰에서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간청하고 빌었다. 그런 내 모습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사건이 접수되려면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내 삶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스스로 입증해야만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반드시 그 원인이 댓글 때문이라는 게 증명되어야만 수사가 진행된다는 말에 모든 것을 내가 증명할 수 있다면 이곳에 내가 왜 찾아왔겠냐고 포효했지만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경찰이 이래요? 제가 한 게 아닌데 인터넷에선 제가 했다잖아요. 그럼 전 누구한테 가서 하소연해요?”
“저기요. 사정은 알겠는데요. 저희도 놀고 있는 게 아니에요. 사람 죽었어요? 돈이나 귀중품 없어지셨나요? 아니잖아요. 근데 지금 저희한테 할당된 건 죄다 그런 사건뿐이에요.”

마지막 희망이라 여기며 찾아간 곳은 다시 한번 나를 학살한 도축의 현장일 뿐. 당장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고 무죄 추정의 원칙에 입각한 수사라 어쩔 수 없다는 게 경찰의 최종 의견이었다. 재산과 인명에 피해가 없는 나와 같은 사건은 경찰의 입장에선 구미를 당기는 소재는 아닌 것 같았다.
몇 번의 하소연을 더 하고서도 부질없는 행동이라는 걸 깨닫곤 힘없이 경찰서를 걸어 나왔다. 물리적 위해를 가하진 않았지만 이미 심적으로 수도 없이 난도질하고 강간당한 나를 외면한 경찰들은 내 입장에선 살인을 방조한 방관자였다.
세상 모든 게 무너진 것만 같았다. 어디서부터 다시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경찰차 위 회전하며 춤추는 사이렌의 조명이 내 몸을 시퍼렇게 물들였다. 마음도 조명처럼 멍이 든 것만 같았다.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집으로 향할 때 누군가 “저기요! 잠시만요” 하며 나를 불러 세웠다.
처음 보는 낯선 남자였다. 그가 나 이외에 다른 이를 부른 것인가 싶어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헐레벌떡 나에게 다가와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쓰곤 나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그가 내민 명함을 의아해하며 살펴보니 문성일보 기자 최진수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우연히 경찰서에서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곤 나에게 지금 이 이야기를 기사화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지금도 충분히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벅차고 힘이 들었고 더는 난도질당하고 싶지 않았다. 난 그가 건넨 명함을 그에게 다시 돌려주며 미안하다고 하자 이럴 때일수록 기사화시켜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잘못된 부분을 교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얼어붙었던 마음이 다시금 흔들렸다. 정말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었다. 그게 썩은 동아줄일지언정 물에 빠진 이에겐 그것도 커다란 희망이었다.

“어차피 지금 이대로라면 변하는 건 없잖아요?”
“정말 바꿀 수 있는 거예요?”
“당장은 어렵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면 분명히 가능해요.”
“그럼 전 뭘 하면 되는데요?”
“일단 저와 인터뷰해주시면 제가 내일 바로 포털에 기사화 할게요. 어차피 기사는 파도에요.”

그는 손으로 파도를 그리듯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파도가 물결을 표현하듯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민망한 듯 머쩍은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왜 파도도 그렇잖아요. 높게 올랐다가 내려가고 다시 높게 올라오고.. 수 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와요. 그중 일부만 저 꼭대기로 올라가고 나머지는 바닥으로 내려오는 거예요. 우리 기자의 몫은 파도의 가장 꼭대기. 바로 여기”

그는 말을 잠시 멈추고 손을 다시 목 밑에서 좌우로 흔들었다. 그곳이 그가 말하는 파도의 꼭대기인 듯 했다.

“여기서 얼마나 오래 버텨주느냐가 관건이거든요. 처음에는 저 아래에서 부 터 시작할 거에요. 그래도 반드시 끌어 올릴 겁니다. 이래 봬도 제가 그쪽으로는 일가견이 있거든요. 제 말 이해되시죠?”
“아.. 아뇨. 사실 무슨 말씀이신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아. 정말요? 흠.”

그는 내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니 조금 답답해하는 듯 보였다. 자신의 턱을 손으로 문지르며 생각에 잠기는 듯싶더니 이내 포기한 듯 다시금 날 바라보며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나머지는 자신이 알아서 할테니 나에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소상히만 알려주면 된다고 말했다.
그의 성격으로 보아 끈기가 있는 성격은 확실히 아니었다. 다른 방도가 없던 난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와 자리를 옮겨 지금까지 나에게 있었던 일을 소상히 말했다. 많은 이야기를 그에게 전달했다. 상세하게 전달할수록 내 억울함을 풀 수 있을까 싶어 이야기는 새벽이 넘도록 끝나지 않았다. 겨우 인터뷰가 끝난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나도 긴 하루였다.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잠시만 침대에 누워있어야겠단 생각을 한 후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어버렸다.
다시 정신을 차린 건 초인종을 누르며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겨우 정신을 차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이른 시간에 누구일까 의아해하며 문을 열자 아파트 전체를 관리하는 통장과 나와 같이 사건의 루머에 연루된 아들의 친구인 엄마가 서 있었다. 몇 번 지나다니며 본 적이 있어 얼굴이 기억났다. 둘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그들 역시 눈인사로 대신했다. 인사가 끝나자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정적을 먼저 깬 건 통장이었다.

“소식 들었어. 요즘 많이 힘들지?”
“네? 아.. 네. 근데 아침부터 어쩐일로..”

둘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로 간의 눈빛을 교환하며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 이번 계주는 통장과 같이 온 엄마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이사를 가주셨으면 좋겠어요.”
“네? 제가 왜요?”

갑작스러운 저들의 통보에 나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내자 그들은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건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내 말을 자르며 자신들의 말을 이어갔다.

“같은 동네에서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또 오다가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서로 불편하고요.”
“전 아무 잘못이 없는데요. 설마 지금 인터넷에 올라온 말도 안 되는 말을 믿는 건 아니시죠?”

둘에게 불쾌감을 표출했다.

“그건 저도 아들에게 물어봐서 아니라는 걸 확인했어요.”
“근데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저도 지금 피해자예요.”
“아이. 민수 엄마가 안 그럴 거야 우리야 알지. 그걸 왜 모르겠어.”

능구렁이 같은 통장이 마치 내 상황을 모두 이해한다는 듯 말하는 말투가 어이가 없었다. 정말 안다는 사람이 아침부터 찾아와서 하는 첫 마디가 이사라는 게 저들의 모순이었지만 저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돌아갈 마음이 없는 듯 했다.

“우리는 알지. 근데 우리만 알면 뭐해. 다른 사람들이 안 믿는데…”
“그거야 곧 진실이 밝혀지면…”
“여기 사람들 집값이 예민한 거 알잖아. 괜히 이상한 소문 나면 집값 올리는 건 어려워도 떨어지는 건 순식간 이니까…. 이런 소문이 난 마당에 둘이 한동네에 살 순 없잖아. 민수 엄마도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니까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통장은 내 상황을 이해한다는 듯 말하며 결국 본질은 네가 이곳을 떠나는 게 맞다는 식의 논조로 말하는 형상이 별로 좋지 않았다.

“두 분 말씀대로 제가 이사하면 사람들이 저를 뭐라고 생각할까요?”
“응?”

둘은 내 질문에 당황한 듯 나를 멀뚱히 쳐다봤다. 난 그들에게 내 의견을 이어나갔다.

“뻔한 거 아니에요? 저 여자가 정말로 뭔가가 있어서 이사갔구나. 소문이 소문이 아니었구나.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건 뻔한 거 아니냐구요?.”
“아니 그거야… ”
“그리고 배울 만큼 배웠다고요? 그럼 배울 만큼 배우신 분들이 아침부터 남의 집에 찾아와서 하는 첫마디가 이사를 가라는 건가요? 이게 배울 만큼 배우신 분들이 하실 행동인가요? 전 이사 못 갑니다. 가려거든 그쪽이 가시던지 아니면 다른 분들이 가시라고 하세요.”

할 말을 쏟아내곤 거칠게 문들 닫자 문밖에서 다시금 문을 두드렸다. 사람들의 이기심에 환멸이 났다. 자신들의 행동에도 내가 반응이 없자 복도에서 날 향한 욕설이 들렸다. 개념이 없다는 둥, 저런 성격이니 이런 일을 당했다는 둥.. 인간의 못됨은 정말 끝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금 정적이 찾아왔다. 내가 살면서 어떤 큰 잘못을 했던가. 억울함과 분함, 슬픔이 한 번에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자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이 세상에 내 편 하나 없다는 서러움. 하루아침에 창녀로 낙인 찍혀버린 억울함. 슬픔은 밑바닥까지 치달았고 바닥까지 모두 비워내 땔까지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그렇게 울다가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퉁퉁 부은 눈을 떠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해는 뉘어 밖은 어두워진 뒤였다. 핸드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42통, 문자 326개, 읽지 않은 SNS 메신저 1539개. 이 많은 전화와 문자, 메신저가 나를 향한 비난일 것이다. 군중심리에 휩쓸려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잔인한지 인지하지도 못하는 모니터 뒤의 살인마들.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해탈까지 하게 된 내 자신의 모습에 쓴 웃음이 배어났다.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모르는 번호가 간간이 보였지만 전화 대부분이 엄마였다. 엄마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는데? 지병이 있는 엄마가 알면 쓰러질까 염려되어 엄마에게만큼은 알리지 않았는데 이토록 많은 부재중 전화가 걸려온 것으로 보아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순간 번뜩이는 게 있었다. 파도를 운운하던 기자. 그는 오늘 포털에 기사를 내보낸다고 말했다. 혹시나 하는 우려스러운 마음으로 포털사이트를 열었다. 가장 먼저 ‘초등학생 상간녀’, ‘위험한 주부’ 등의 실시간 검색어가 보였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아닐거라고 내 기사가 아닐거라고 생각하며 클릭했다.
검색어가 입력되자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과연 우리는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그녀는 왜 집으로 초등학생을 불러드렸을까?’..
기사의 제목은 자극적인 제목을 시작으로 기사의 내용 역시 인터뷰한 내용에서 조금씩 왜곡된 듯 본질을 빗겨나갔고 내가 하니 인터뷰에 자신들의 상상력을 덧칠하여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기사가 써졌다. 기사의 내용만 본다면 난 성욕에 미쳐 어린아이를 유린한 창녀였다. 포털은 며칠 동안 나에 관련한 검색어가 상위권을 유지했고 하루에도 몇십, 몇백 개의 자극적인 기사들이 문구만 수정되며 계속해서 쏟아져나왔다. 적법한 의심이라는 잣대로 펜대를 굴리며 어제보다 오늘, 더욱더 자극적인 문구로 글을 써 내려갔다. 그 기자의 말한 파도가 이런거라면 성공한 것 같았다. 이제는 종일 모든 매체에서 내 이야기만 나온다. 엄마에게 끊임없이 연락이 왔지만 난 받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또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하필 그 주인공이 나라는 사실이 억울했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마치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안다는 듯 바라보는 시선들의 압박이 날 더욱 옥죄어왔다.

그리고 드디어 힘들긴 했지만, 이 난국을 타개할 방법을 찾았다. 오랜만에 샤워하고 정갈하게 머리를 빗었다. 다가오는 결혼기념일에 입으려고 사두고 아껴둔 빨간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하얀 진주 귀걸이를 포인트로 착용했다. 거울에 비친 내가 마음에 들었다. 기초화장부터 꼼꼼히 세상 그 누구보다 예쁘게 화장을 했다. 그리고 종이에 짧은 글귀를 적은 뒤 내 죽음으로 결백이 증명되길 희망하며 작년 남편 생일 때 직접 골라 선물한 넥타이로 목을 맸다. 내가 죽고 내 결백이 밝혀지면 그 자리는 또 다른 누군가의 몫이 될 것이다.

날 죽인 건 누구일까?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듯 아침 태초에 이런 행위를 실제 사건의 주인공일까? 나를 믿어주지 못하고 날 사지로 밀어 넣은 남편일까? 잘못된 신상털기로 처음 내 정보를 공개한 사람일까? 아니면 그 정도를 군중심리에 휩쓸려 모니터 뒤에서 욕설과 비판을 쏟아낸 사람일까? 도움을 요청했어도 방관한 경찰일까? 특종에 목이 말라 거짓 정보로 인격을 말살시킨 기자일까?
목을 내가 맸으니 난 자살이 맞을까? 아니면 암묵적 살해를 당한 걸까? 도대체 날 죽인 사람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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