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지금부터 작성될 이 문서는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한 인류 보고서이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냉철하지 못하며 어쩌면 식상할수도 있는 보고서이지만 그것마저도 나의 사명이기에 나는 이 문서를 작성한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변곡점을 그리며 눈부신 발전과 함께 성장해왔다. 인류가 불을 발견했을 때, 철기를 발견했을 때 인류는 계몽하였다. 그리고 다시 산업혁명과 근대화를 통해 인류는 다시 한번 개화를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없어지기도 하고 전혀 새로운 기술과 혁신이 탄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나는 인류가 다시 한번 눈부신 번영과 도약을 위해 나아가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로봇의 발전이 있었다. 처음 로봇이 등장했을 때는 외형만 겨우 로봇의 형태를 유지한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인류는 실패라는 단어를 좌절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끊임없이 연구했고 또 도전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SF영화에서나 보던 로봇들이 우리 삶에 스며들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노동은 이미 예전부터 로봇의 역할이었고 위험하고 사람들이 꺼리는 3D업종부터 의견을 듣고 법률을 진행하는 판사나 피고인을 변호하는 변호인, 질병의 유무를 판단하고 처방하는 의사부터 육아를 전담하는 로봇이나 치매 노인을 부양하는 노인전문 로봇까지 삶의 곳곳에서 다양한 로봇들이 인류가 하던 업무 대부분을 로봇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오직 자신이 맡은 업무를 이행하는 로봇에게 사람들은 열광했다. 휴대폰이 출시된 후 사람들에게 휴대폰이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게 되었듯 인류에게 로봇은 인류의 삶에 필수 불가한 존재로 변했다. 로봇이 본격적으로 인류의 삶에 출현한 건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무색하게 로봇은 아주 빨리 인류의 삶에 녹아들고 있었다. 바야흐로 인류와 로봇의 공존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럼에도 다양한 로봇기술 중 으뜸을 꼽으라면 전 세계 과학의 권위자들이 매해 인류의 삶에 혁신을 가져온 기술을 선정하는 자리에서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당히 올해의 가장 위대한 기술 1위에도 선정된 기술인 ‘PRH’가 바로 그것이었다.
부분적 로봇화 수술(Partial robotic surgery)과 인간(Human)의 합성어인 이 수술은 사고나 선천적 장애로 인해 신체의 기능이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로봇으로 만든 신체를 사람의 피부를 배양하여 결합한 신체를 이식하는 수술이었는데 외형마저도 사고 이전 사람의 신체와 같아 전혀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으며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 말하지 않는 이상 타인이 수술했는지에 대한 여부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수술은 정교했고 섬세했다.
평생을 휠체어에서만 생활하던 사람들에겐 땅 위를 걷는 행복을 선물했으며 전쟁으로 두 팔을 잃은 소년에겐 다시금 꿈을 꿀 기회를 제공했다. 수술의 면적이 크거나 남아있는 신경이 모두 손상되어 있었어도 수술 대부분은 성공적이었다. 기존의 수술에 대한 상식과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수술임이 분명했다.
다만 접합한 수술 부위를 제어하기 위해선 뇌에 작은 마이크로 칩을 이식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존재하였는데 희망없이 숨만 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겐 그 정도의 문제점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제2의 인생을 꿈꿀 수 있게 해준 기적과도 같은 수술이었기에 사람들은 PRH 수술을 인류의 축복이라 불렀다.
인류는 삶에 편의성과 발전을 이루게 해준 로봇기술에 감사했다. 인간과 로봇의 공생은 그렇게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둘의 유착 관계는 호숫가에 작은 조약돌 하나가 떨어지면 호수 전체로 파동을 일으키며 퍼져 나가듯 너무나도 작은 사건 하나가 인류의 삶에 파동을 일으켰는데 그 사건은 대한민국 소도시에서 일어난 강간 사건이었다.
사건의 내용은 너무나도 간단하고 명백했다. 피의자 윤씨는 늦은 밤 택시에서 내려 귀가하던 피해자 김양의 뒤를 쫓아가 자신의 집에 들어가려던 김양을 폭행한 후 기절한 김양을 도로 한복판에서 성폭행한 사건으로 맞은편 집 창문에서 해당 광경을 목격한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게 현장에서 바로 체포된 사건이었다. 피의자 윤씨 역시 현장에서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고 너무나도 명확한 피의자와 피해자가 존재했기에 경찰과 피해자의 예상으로는 사건이 평이하게 흘러갈 줄 알았다.
그것은 오판이었다.
피의자 윤씨는 경찰차에 올라탄 후 경찰서로 연행될 때에도 끊임없이 혼잣말을 되새기며 중얼거렸다. 주의하여 듣지 않으면 혼자서 웅얼거리는 말투였다. 강 형사는 윤씨가 내뱉는 말을 확인하기 위해 윤씨의 중얼거림에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자 웅얼거리던 말들이 하나의 문장으로 강 형사에게 전달되었다.

“이건 내가 한 게 아니야. 이건 내가 한 게 아니야.”

고개를 떨군 채 끊임없이 같을 말을 반복하는 피의자를 보자 강 형사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수없이 많은 범죄자들을 잡았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부정하지만, 현행범으로 잡힌 범인이 형사들과 함께 경찰서로 향하는 순간에도 부정하는 모습을 본 건 강 형사는 처음이었다. 강 형사는 염치가 없거나 소시오패스, 자기부정자등 다양한 추측을 하며 더는 피의자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서로 이송된 피의자의 태도는 조금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한 범죄가 아니라고 부정했고 그런 모습에 강 형사를 포함한 모든 형사가 어이없어했다. 단 한사람 피해자는 인두겁을 쓴 피의자의 모습에 참아왔던 눈물이 터졌다. 한번 터져버린 감정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듯 했다. 삽시간에 경찰서 가득히 그녀의 울음소리로 매워졌다. 어수룩한 형사들이 손에 휴지 몇 장을 쥐곤 피해자를 달래려 쭈뼛거렸지만 소용없었다.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강 형사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피해자를 배려하기 위해 부하 경찰을 시켜 피해자가 치료 후 집에까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지시했다.. 강 형사의 지시를 받은 막내 형사는 그녀를 부축하며 경찰서 밖을 빠져나갔고 그제야 경찰서에 다시금 고요가 찾아들었다.
강 형사는 고개를 숙이고 여전히 중얼거리는 피의자 윤씨를 바라봤다. 낯짝이 저리 두꺼운 피의자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분위기 반전이 필요했다. 강 형사는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책상을 내리쳤다. 쾅 하는 소리가 나자 연신 중얼거리기만 하던 피의자가 초점 없는 눈으로 고개를 든 후 강 형사를 바라봤다. 조금도 주눅이 들거나 강 형사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똑바로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강 형사는 구역질을 느꼈다.

“왜 그런 거야?”
“진짜 제가 한 게 아니에요.”
“넌 그 현장에서 체포된 거야. 그 주변에는 다른 누구도 없었고 네가 한 행동 CCTV에도 고스란히 다 찍혀있어.”
“그거야 알죠. 그런데요. 진짜로 제가 한 게 아니라니까요.”

그는 현장에서 자신이 잡힌 것도 인정하고 피해자를 겁탈한 사실 역시 인정했지만, 그 모든 행동은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는 변함이 없었다. 범행은 인정하지만, 자신이 한 건 아니라니 괴변이었다.
강 형사를 포함하여 경찰서 안의 형사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럼 뭐. 최면 이런 거라는 거야?”
“아니요.”
“그럼 뭔데?”

강 형사의 질문에 그는 왜 자신이 한 게 아닌지에 대해 강 형사를 포함한 경찰서 안의 모든 형사에게 설명했다.
그는 2년 전 암벽등반을 하다가 추락하여 큰 사고를 당하게 되었는데 척추를 심하게 다쳤다. 낙상의 여파로 하반신은 완전히 마비되었고 떨어지면서 본능적으로 충격을 저항하려 했던 양쪽 팔은 모두 절단해야 했으며 살아남은 게 기적에 가까울 정도의 추락사고였다. 운이 좋게 다행히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하루아침에 신체의 모든 기능이 망가진 그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혼자서는 밥도 먹을 수 없었으며 화장실도 자신의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신체는 어른인데 모든 행동에 대한 제약은 신생아와 같았다. 삶에 희망이 없었고 자살을 생각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당시만 해도 아직 상용화와 안정성이 인정받기 전인 PRH수술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렇게 죽나 저렇게 죽나 죽는 건 매한가지라고 생각한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PRH 수술은 선택했다.
희망이라는 믿음 아래 스스로 실험군을 자처한 것이다. 이미 사고로 절단 수술을 마친 그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단계별로 신체를 바꾸기에는 환자의 체력이 버텨주지 못할게 불 보듯 뻔했다. 결국, 의료진은 모험이었지만 여러 의사가 양쪽 팔과 양쪽 다리를 동시에 수술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의 수술에만 7명의 의사가 동시에 집도를 맡았다.
팔 한쪽이나 발목 등 신체의 극히 일부분만 로봇화로 바꾸는 수술은 있었지만, 이마저도 많지 않았고 더욱이 피의자 윤씨처럼 한 번에 모든 곳을 다 바꾸는 수술은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그 사례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수술을 맡은 의료진도 긴장하였고 세계에서도 해당 수술에 이목이 쏠렸다.
사람들의 주목하에 시작된 그의 수술은 로봇화 수술을 위해 이미 절단된 팔 안쪽을 조금 더 절단하였으며 마비가 온 두 다리 역시 절단 후 로봇화 수술을 진행했다. 양팔과 두 다리 및 허리 아랫부분까지 자신의 몸에 74% 이상이 로봇으로 바뀌었다. 수술시간만 19시간이 넘는 강행군의 대수술이었다. 천운이 도운 탓인지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삶을 포기하기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한번 새로운 삶을 선물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윤씨는 이제 와서 자신에게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 준 PRH 수술이 자신이 범행을 저지르게 된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는데. 네가 그 수술 받은 유명인이라고?”
“그게 아니라…”
“그럼 네가 지금 우리한테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뭔데. 슬슬 열 받으려고 하니까 결론만 말해. 말 자꾸 빙빙 돌리지 말고.”

피의자 윤씨는 자신의 의도를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강 형사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강 형사는 이런 인간 같지 않은 놈도 인권을 존중해줘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개탄스러웠다. 자신을 벌래 보듯 바라보는 강 형사를 바라보며 윤씨는 말을 이어갔다.

“형사님. 생각해보세요. 제 다리와 제 팔이 제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제가 무얼 할 수 있겠어요. 저도 미치겠어요.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시끄럽게 소리가 들리고.. 수술할 때 머릿속에 작은 칩도 심었다고요. 여기에.”

그는 수갑을 찬 자신의 양손을 머리까지 추켜올린 후 오른쪽 검지를 자신의 관자놀이 부근을 두드렸다. 자신을 조롱하는 듯한 피의자의 태도에 참아왔던 강 형사의 분노가 결국 폭발했다.
“이 개새끼가. 끝까지 반성의 기미가 없네. 태어날 때부터 나쁜놈은 없다지만 너 같은 벌레 새끼는 애초에 사람 취급을 해주면 안 되는건데.. 지금까지 네 이야기를 참고 들어준 내 자신이 한심하다. 이 새끼 지금 바로 영장 청구해서 그냥 넘겨.”

강 형사의 지시에 강 형사와 동질감을 느끼던 동료 형사들은 일사불란하게 피의자 곁으로 다가와 그의 어깨를 잡고 일으켜 세웠다. 피의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강 형사를 불러세웠다.

“저…. 형사님”

강 형사의 차가운 시선이 피의자의 얼굴에 내리꽂혔다. 경멸감이 가득 서려 있었다. 얼음장 같은 강 형사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피의자 윤씨는 강 형사의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

“형사님은 저처럼 몸에 PRH 수술받아 보셨어요?”
“뭐?”
“저처럼 몸 50%가 넘는 곳에 로봇으로 이식해 보셨냐고요? 그게 아니라면 왜 제 말을 못 믿으세요? 제 주장이 정말일수도 있잖아요.”

예상치 못한 피의자의 질문에 강 형사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건 그곳에 있는 다른 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피의자 윤씨는 최후의 변론을 하듯 강 형사를 향해 자신의 주장을 쏟아내었고 초지일관 되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남성의 주장에 흔들렸다.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근데 정말이라고요. 진짜 제 의지대로 몸이 움직인 게 아니라니까요.”

그곳의 모든 사람이 피의자 윤씨의 주장에 반박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확신을 가질 수도 없었다. 진퇴양난이었다. 국내에 피의자처럼 신체 대부분을 수술한 사람도 드물었고 그들도 PRH 수술이 많은 경험과 안정화가 이루어진 후에 수술을 받은 경우라 피의자와 같은 조건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앞의 사내가 범인이고 인간말종이라고 생각한 게 불과 몇 분 전일인데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사내의 주장이 만약 사실이라면 강 형사는 어떠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본인을 바라보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피의자 윤씨의 얼굴을 보자 강 형사는 갑자기 모든 게 혼란스러워졌다.
남성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정황상 피의자 윤씨에게 죄가 없다고 말을 할 순 없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적군을 향해 총을 쏜 군인을 처벌할 수 없듯 자신의 의지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이 사내를 누가 비난할 수 있을것인가. 강 형사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따라야 하는 형사였다. 정말 피의자 윤씨의 주장대로 자신의 의지가 조금도 없었다면 이 사건은 전혀 다른 결과를 도출하게 되는 사건이었다. 모두가 얼어붙은 듯 자리에 멈추어 서 강 형사의 입만을 바라봤다. 강 형사 역시 입만 덜그럭 거릴 뿐 그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전운이 감돌았다.

어색한 침묵을 깬 건 경찰서 담당 출입 기자인 최 기자였다. 최 기자의 등장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최 기자를 향했다. 최 기자 역시 문지방이 닳도록 경찰서 문턱을 들락거렸다. 특종이 있는 곳이라면 사신을 쫓아 지옥에 가서라도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게 최 기자의 삶의 강령이었다. 그런 그가 평소와 공기가 다르다는 걸 눈치 못 챘을리 없었다. 무거운 공기에 억눌린 형사들과는 다르게 이런 공기는 기자의 입장에선 가장 기분 좋은 공기였다. 특종이다. 최 기자의 마음속에서 메아리가 울렸다. 이건 기자 특유의 감이자 육감이었다. 사냥꾼처럼 숨죽이고 포획해야 하는 사냥감을 탐색하며 뱀 같은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독수리가 먹이를 발견한 것처럼 최 기자의 두 눈에 먹이가 포착됐다. 차갑게 식은 수갑을 차고 전의를 상실한 남자와 그런 피의자를 혼돈의 눈으로 바라보는 강 형사의 모습에서 최 기자는 저 둘이 자신의 피앙세이자 메시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가방을 뒤져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자신의 음성레코더를 동작시킨 후 강 형사를 응시하고 있는 박 형사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낀 박 형사는 고개를 돌리자 의뭉스러운 웃음을 짓고 서 있는 최 기자가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박 형사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거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최 기자가 박 형사에게 속삭이며 물었다.

“박 형사님. 무슨 일이에요?”

최 기자의 질문에 여우 같은 눈을 끔뻑거리던 박 형사는 눈짓으로 문밖을 바라보며 밖으로 나오라는 듯한 눈빛을 보낸 후 박 형사는 문밖을 빠져나갔다. 최 기자는 어미 오리를 따르는 새끼 오리처럼 박 형사의 뒤를 따라나섰다.
밖으로 나오자 박 형사가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최 기자는 담배 하나를 건네 박 형사에게 권하자 박 형사는 최 기자의 손에 들여있던 담배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 불을 붙였다. 뿌연 푸른 연기가 어둠을 가렸다.

“박 형사님. 안에 분위기 왜 그래요? 완전 심각한 것 같던데.”
“에이. 안돼. 워낙 신중한 문제라..”

박형사는 말끝을 흐리며 다시금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최 기자는 박 형사가 교활한 사람인 걸 익히 알고 있었다. 저렇게 말끝을 흐린다는 것은 정보를 대신할 가치를 보상해 달라는 말과 같았다. 최 기자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박 형사에게 건넸다. 그가 건넨 명함에는 술집 이름이 적혀있었다.

“거기가 이번에 오픈한 곳인데 제가 잘 아는 동생이 하는 곳이거든요.”
“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건데? 설마 술 팔아주라고? 에이 이런 데는 비싸서 우리 못가.”

손사래를 치며 다시금 최 기자에게 명함을 건네는 박 형사의 주머니에 명함을 다시 집어넣었다.

“공짜에요. 공짜.”

공짜라는 말에 박 형사의 두 눈이 커졌다.

“거기 아가씨가 아주. 아시죠? 즐겁게 드시고 제 이름 말씀하시면 됩니다.”
“뭘 이런걸..잘 마실께. 최 기자.”

그제야 박 형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살을 주었으니 뼈를 취할 시간이었다. 최 기자는 박 형사에게 다시 어떻게 된 상황인지 물었다. 질문을 들은 박 형사는 주변을 살핀 후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최 기자에게 바짝 다가간 후 귓가에 속삭였다.

“아까 강 형사 앞에 앉아있는 남자 기억나지?”
“그렇죠. 그런데 왜요?”
“그 새끼가 현장에서 잡힌 강간범인데.. 지금 지가 안 했다고 우기고 있는 거지”
“현행범인데 그게 말이 돼요?”
“그러니까.. 근데 저 놈 몸이 부분적 로봇화 수술을 했나 봐. 그것도 존나게 많이.”
“그거 요즘 많이 하잖아요. 장애인들이나 사고로 당한 사람들에게는 기적으로 불리는 수술인데.”
“어. 나도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문제는 그 신체 거의 다가 로봇이라는 거야. 팔이며 다리며 척추 윗부분까지 했다는데.. 솔직히 뇌에도 칩을 심으니 몸통 조금 빼곤 다 로봇인 거지.”

최 기자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큰 특종임을 예감했다. 자신의 기사 몇 줄에 얼마나 많은 파문이 불러올 지 최 기자는 흥분으로 몸이 떨렸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요?”
“몰라. 나도.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는데 그걸 증명할 방법이 있나. 그렇다고 무조건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고. 자신이 한 강간을 자기 의지가 아닌 자기 이식된 로봇이 했다는데..”
“그래서 아까 그렇게 다들 심각했던 거군요.”

훑어졌던 조각들이 하나씩 맞추어지며 이미 최 기자의 머릿속에선 기사 꼭지가 작성되고 있었다. 박 형사는 손에 쥔 담배를 마지막 모금까지 깊게 빨아들인 후 비벼껐다.

“최가자. 나 먼저 들어갈게. 안에 분위기가 심각하니. 오래 끌 수는 없으니까.”
“아.. 네. 먼저 들어가세요.”
“그럼 먼저 실례할게.”

박 형사는 빠른 걸음으로 다시 경찰서로 향하다 멈춰선 후 최 기자를 불렀다.

“최 기자. 난 아무 말도 안 한 거 알지?”

최 기자는 끝까지 계산적이고 교활한 인간이라 생각했다.

“그럼요.”

최 기자의 대답을 들은 후에야 박 형사는 경찰서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최 기자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후 빠르게 전화번호를 찾았다. 김 국장의 전화번호가 눈에 들어오자 최 기자는 통화버튼을 길게 눌렀다. 잠시 후 핸드폰 너머로 김 국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국장님. 저 최 기자입니다. 특종이에요. 다름이 아니라.. 강간 사건인데요. 아니 이게 일반적인 강간 사건하고는 조금 성격이 다른데요. 그 강간범 몸이…….”

피의자 윤씨의 강간 사건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자 최 기자의 판단대로 온 나라가 들썩거렸다. 피의자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치열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남성의 말이 진실이라고 믿는 무리에서도 인류의 축복인 수술을 포기할 수 없다는 부류와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기술은 더는 안전하지 않기에 지금이라도 당장 사장해야 한다는 부류로 나뉘었다. SNS와 TV토론에선 매일같이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하며 토론했다. 그렇지만 무엇하나 뚜렷이 결론지어지는 것은 없었다. 처음에 다루어져야 할 피해자의 인권은 무시됐고 본질은 가라앉았다. 이슈를 이슈로 덮고 또 다른 이슈가 대두되며 프레임 속에 생각의 틀을 가두는 탁상공론이 이어졌다.
짙은 푸른 연기가 다시금 피어나고 있었다.

한번 물살을 타고 거세진 여론은 쉽사리 잠들지 않았다. 결국,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사건은 국민 참여 재판으로 이뤄지게 되었고 역사로 기록될 재판을 보기 위해 방청을 신청한 사람들이 몰렸다. 경쟁률만 50:1로 사람들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여론은 팽팽히 맞서는 양국이었기에 재판의 결과가 어느 쪽으로 치우치더라도 사회적 파장은 예견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 속에 최종 재판 날이 다가왔다.
변호인 측에는 피의자 신분으로 PRH수술은 받은 윤씨가 앉아있었고 검사 측에는 피해자 신분으로 성폭행을 당한 김양이 앉아있었다. 김양은 성폭행을 당한 것도 수치스러운데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모든 사람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고 부끄러웠다. 그럴수록 김양의 고개는 더욱 바닥으로 숙였고 자신의 범죄에 무죄를 주장하는 윤씨의 고개는 빳빳해졌다.
방청석에는 윤씨의 태도를 보고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윤씨는 그럴수록 더욱 고개를 치켜세울 뿐이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그런 사람들의 소음은 재판장이 들어오자 잦아들었고 재판장이 자리에 착석 후 재판은 시작되었다. 창과 방패처럼 변호사와 검사의 주장은 서로의 급소를 향해 찌르고 막기를 반복하며 팽팽히 대립했다. 방청객들은 두 사람의 의견을 들으며 때로는 공감했고 때로는 격분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설전이었다. 그리고 세기의 재판 역시 결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검사 측 최후 변론하세요.”

재판장은 말에 검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법원 가운데로 나왔다. 검사는 재판장과 방청석을 천천히 둘러본 뒤 자신의 최후변론을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검사의 입으로 향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배심원 여러분들.
지금 여러분의 앞에 앉아있는 이 여성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합니다. 아주 조금만 다쳐도 아픈데 감히 저희가 피해자의 고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배심원 여러분.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원고인이 여러분의 가족이자 친구라고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딸이, 여러분의 친구가, 여러분의 누나, 언니가 어느 날 갑자기 한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는데 현행범으로 잡힌 범인은 자신이 한 행동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디에 호소해야만 할까요? 법 앞에선 그 누구도 상하관계에 없이 평등해야만 하는 게 아닐까요?”

검사 측의 주장을 듣던 변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검사의 말을 끊고 재판장을 바라보았다. 재판장 역시 변호인을 바라봤다.

“이의 있습니다. 지금 검사는 정확한 판결이 나지도 않은 사건에서 피고인을 범인이라고 단정 짓고 있습니다.”

재판장은 변호인이 한 말을 들은 뒤 검사를 바라보았다.

“받아들입니다. 검사 측 호칭에 신경 써주세요.”

검사는 재판장의 말을 들은 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 길을 가다 사람하고 어깨만 부딪쳐도 사람들은 서로에게 사과합니다. 하물며 이번 사건은 성폭행입니다.
더욱이 피고인은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피의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게 올바른 순서 아닐까요? 지금처럼 자신의 태도를 부정하는 게 아니고 말이죠. 그렇기에 저는 한 여성의 인생을 철저하게 망가트려 놓고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범행이 발생하였다고 주장하며 뻔뻔하게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에게 본 검사는 징역 7년에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200시간을 구형하는 바입니다. 이상입니다.”

검사의 말에 몇몇 배심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판장은 검사의 주장을 모두 들은 후 변호인에게도 동일하게 최후 변론을 하라 명했다. 재판장의 말을 들은 변호사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법원 가운데로 나와 섰다. 그 역시 재판장과 방청석을 천천히 돌아본 후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배심원 여러분들. 저는 우선 저의 피고인을 대신하여 원고인에게 일어난 불행한 사건에 대해서 죄송하다고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은 피고인은 명백히 무죄입니다.”

변호사의 최후 변론이 이제 막 시작했음에도 법원의 많은 사람에게 빈축을 산 듯 법원은 욕설과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지금 뭐라는 거야?”
“미친거아냐?”

법정에 참석한 기자들의 타이핑은 빠르게 움직였고 검사와 피해자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법정에서 표정의 변화가 없는 건 오직 재판장과 로봇뿐이었다. 서기 로봇은 빠르게 법원에서 나온 모든 말들을 적어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소란스러워진 법정을 둘러보던 재판장은 판사봉을 두드렸다. 술렁이던 재판장은 일순간 얼어붙은 듯 조용해졌다.

“정숙하세요. 본 법정의 재판을 더는 방해하면 강제로 퇴장시키겠습니다. 변호인. 마저 변론하세요.”
“감사합니다. 재판장님.”

변호사는 조용해진 배심원과 방청석을 돌아보았다.

“제가 갑자기 피고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씀드리니 많은 거부감이 있었을 거로 생각합니다. 저도 검사의 말에 동의합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죠. 백번 지당하고 옳은 말씀입니다.”

변호인의 말에 검사와 방청객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모두 주목했다.

“그럼 제가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피고인은 PRH 수술을 통해 신체 대부분이 로봇입니다. 물론 이 수술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받는 수술입니다. 사고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게 해주는 기적과도 같은 수술이죠. 여기 자리에 앉아있는 피고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피고인 역시 3년 전 큰 사고로 인해 양팔이 절단되었고 하반신이 마비되어 삶을 포기했죠. 그리고 마지막 희망으로 이 수술을 받았습니다. 피고인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변호사는 윤씨에게 질문을 던졌고 윤씨는 사실관계에 따라 짧게 대답했다.

“여러분. 수술 당시 피고인은 두 팔을 이식하기 위해 어깨 위쪽까지 절제하였고 두 다리를 이식하기 위해 허리 위쪽까지 절단하였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수술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수술을 받은 신체의 퍼센트(%)에 있습니다. 피고인은 자신의 신체에 50%가 넘는 조금 더 정확히 말씀드려서 약 74%를 로봇으로 변환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여러분께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피고인과 같이 50%가 넘는 신체가 로봇으로 바뀐 사람을 우리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지금은 바야흐로 인간과 로봇이 융합되어 살아가는 메카닉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인간과 로봇의 정의를 다시 해야만 하는 시대가 아닐까요? 재판장님 피고인의 수술 기록을 증거로 제출합니다.”

변호사는 재판장에게 피고인의 수술 기록을 제출한 뒤 다시 배심원과 방청석을 둘러보았다. 배심원과 방청석은 변호인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술렁이고 있었다. 여태껏 누구도 이 논제로 문제로 삼는 사람은 없었다. 변호사는 숨은 한번 고른 후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제가 이 사건은 피고인이 일으킨 게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신체 대부분이 로봇인 피고인은 로봇으로 봐야 할까요? 아니면 사람으로 보는 게 맞을까요? 그리고 피고인의 주장대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로봇의 명령으로 신체가 움직였다면 그것은 무죄가 아닐까요? 만약 로봇이라면 우리는 로봇에 관련된 법규가 존재는 한가요? 지금 제가 하는 모든 말을 받아 적고 있는 서기 로봇과 피고인이 다른 건 무엇일까요?”

변호인의 말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순간 서기 로봇으로 향하였지만, 여전히 서기로봇은 자기 일을 묵묵히 수행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저의 주장에 이렇게 반문할지 모르겠습니다. 사고를 스스로 할 수 있으므로 피고인이 로봇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럼 인공지능은 로봇이 아닌가요? 로봇입니다. 인공지능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품 모두 전부 로봇이죠. 이 사실에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신체를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또 그 퍼센트(%)가 어느 정도의 비율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피고인의 주장을 단순히 망상과 헛된 주장이라고 치부했던 것은 아닐까요? 피고인은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우린 스스로 두 눈을 가리고 진실을 외면했던 것은 아닐까요?
다시 한번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자신의 신체에 50%가 넘는 피고인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로봇입니까? 이상입니다.”

서기 로봇은 변호인이 하는 말을 모두 받아 적어 내려갔다. 변호인의 변호가 끝나자 법원은 일순간 웅성거렸다. 재판장은 다시 한번 판사봉을 들어 내리쳤다.

“최종 판결을 위해서 잠시 휴정하겠습니다. 본 법정은 30분의 휴식을 하고 최종판결하겠습니다.”

재판장이 휴정을 명한 후 법원을 빠져나가자 아직 최후판결이 나지 않았음에도 재판을 참관한 기자들의 손은 바쁘게 타자를 두드렸다. 저마다의 추측으로 최후판결이 어떻게 날 것인지 예측했다. 모두의 예측은 서로의 관점에서 접근했기에 하나의 통일된 결론이 아닌 제각각의 결론들이 쏟아져 나왔다. 잠시 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재판장이 착석하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국민 참여 재판인 만큼 배심원들의 의견을 먼저 들은 후 최종판결하겠습니다. 배심원들 판결 내려주세요.”

누군가는 검사의 의견에 동조했고 누군가는 변호사의 의견에 동조했다. 만장일치가 기본인 배심원 판결은 결국 만장일치를 이루지 못했고 다수결 투표로 진행되었다. 배심원이 내린 판결은 3:3으로 무죄와 유죄가 팽팽히 맞섰다. 처음 사건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배심원들이 내린 판결은 놀라운 결과였다. 배심원의 판결을 본 재판장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얼마간의 시간 동안 정적이 이어졌고 마음을 굳힌 듯 재판장은 판결을 읽어 내려갔다.

“최종 판결하겠습니다. 피고인은 형법 제32장 강간과 추행의 죄에 형법 제297조, 제298조에 의거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변호인의 말처럼 피고인을 인간이 아닌 로봇으로 규정한다면 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 피고인의 주장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로봇의 의지로 범죄가 발생한 것이라면 양팔과 다리 모두 로봇인 피고인은 자신의 신체를 제어할 수 없기 때문에 저항할 수 없다는 점,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자신이 하지 않은 범죄라고 주장하는 점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다만 검사의 주장대로 법 앞에선 모두가 평등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본 법정은 피고인에게 3년의 징역 및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다.”

재판장의 최종 판결이 확정되자 변호인과 피고인은 승리의 축배를 들었고 검사는 인상을 찌푸렸으며 피해자인 김양은 고개를 숙인 채 흐느꼈다. 그 누구도 피해자의 눈물에 관심을 쏟지 않았다. 오직 로봇으로 인정받아 사실상 법의 심판을 피해간 피의자 윤씨에게만 관심을 쏟을 뿐이었다. 포털사이트에는 수많은 재판에 관한 기사가 올라왔다.

‘로봇과 인간의 기준은 신체의 퍼센트(%)가 좌우?’, ‘로봇을 제한할 수 있는 법의 기준 마련이 시급’ ‘인간과 로봇은 과연 공생할 수 있는가?’, ‘인류는 과연 존속되는가?’..

정부의 어떠한 공식발표가 없었음에도 판결문을 근거로 재편집되고 살이 붙은 새로운 기사가 요동쳤다. 언론은 여론을 만들었고 여론은 사회의 패러다임을 재정의 했다. 무엇하나 중립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곳은 없었다.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지만 누구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 규제가 더 이상의 규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자 세계 곳곳에서 범죄가 급증했다. 범죄를 저지른 후 체포되어도 “난 로봇이야.” 라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로봇이 면책권처럼 작용했고 사람들 사이에선 멀쩡한 신체를 일부러 떼어내고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죄의 무게는 가벼워졌고 유죄와 무죄의 구분은 불분명해졌다. 두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면 PRH에 관해 이야기했고 신문, 라디오, TV 등 모든 미디어 매체들은 PRH에 대하여 치열하게 공방했다.

“전 사람의 신체 중 로봇으로 구성된 비중이 70%가 넘으면 로봇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비중은 누가 정한 건데요? 그럼 69.99%는 인간이에요?”
“사고의 흐름이 인간과 로봇을 규정짓는 잣대가 되지 않을까요? 몸은 로봇이라도 우리가 로봇과 다른 건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 아닌가요? 전 사고의식이 있으면 몸에 아무리 많은 기계가 있어도 인간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알파고도 인간이에요? 스스로 사고 하잖아요? 그 외 수많은 인공지능은요?”
“여기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제가 볼 때 로봇과 인간의 구분은….”

뜨겁게 서로의 시시비비를 다투었지만, 이야기의 논점은 항상 흐려졌다. 언론의 압박, 인류의 봉기가 이어졌다. 대통령은 이런 사태에 대하여 유감을 표했다. 얼마 안 있으면 개최될 G20 회의에서 반드시 이 논의에 대해 합의한 후 세계 공용법을 상용하겠다고 약속한 뒤에야 극에 치닫던 사람들의 분노가 잦아들었다.
G20 회의에 여러 주제를 가지고 의견을 나누었지만 가장 뜨거운 감자는 역시 로봇에 대한 정의였다. 대한민국 이외에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사례 때문에 다들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이번 회의에서 어떻게든 결론을 도출하기로 했지만, 서로의 견해차로 인해 쉽사리 그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오랜 논의 끝에 서로의 집단에 해가 되지 않을 교집합을 찾고 나서야 긴 회의는 끝이 났다.

대통령은 귀국 후 합의된 법안을 공표했다. 합의된 법안은 총 네가지 였다.
첫째 인간의 기준은 자신의 신체에 로봇인 부분이 20% 미만으로 스스로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로봇으로 분류된 자는 투표권을 가질 수 없다.
셋째 로봇으로 분류된 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즉각 심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반드시 복종한다가 그것이었다. 법안이 발표되자 사태는 법안을 발표하기 전보다 더욱 안 좋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법안을 조금만 살펴보면 공표된 법이 무서운 법인지 알 수 있는데 한번 로봇으로 낙인 찍히면 다시는 예전처럼 살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한번 권력을 잡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겠다는 숫자놀음이 명백히 드러나는 법안이었기에 장애인과 이미 신체에 20% 이상 로봇이 이식된 사람들은 혁명을 꾀하며 일어났지만, 그들은 힘이 없었고 실패했다.

역사는 언제나 힘이 있는 자가 승리하는 법이었다.

사고로 다쳐 수술하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음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수술을 포기했다. 인류의 과학은 발전했지만, 다시 삶과 혜택은 퇴보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머리 없는 시체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살해당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PRH수술을 전혀 받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권력자와 경찰들은 법에 앙심을 품은 일부 집단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착수했지만 뚜렷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 지문도 없었고 시체가 발견되는 장소, 시간도 모두 일정하지 않았다. 지속된 수사를 진행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더는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기에 경찰은 집단이 와해되었거나 다른 이유로 살인을 멈춘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고 여론의 악화를 우려한 권력자들은 빠르게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분류되었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잊혀졌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며 혼돈기가 지나갔고 안정기가 찾아왔다. 그리고 이제는 인류의 수보다 로봇의 수가 더 많다. 세계 정상들과 주요 인사들 역시 모두 로봇으로 대체되었다.
이 모든 건 가볍게 치부한 미제사건이 발단이었다.
법이 공표되자 힘없은 인류의 봉기와는 다르게 로봇은 자신들의 미래를 철저히 계산했다. 인류를 생포해 머리를 통째로 뽑아낸 후 자신들의 인공지능 머리를 인류의 신체에 심었다. 실험하기 위해선 많은 표본이 필요했다. 많은 인류가 모르모트로 사용되었다.
실험 후 실패한 인류는 거리에 내다 버렸고 다시금 새로운 표본을 채취해서 실험하길 반복했다. 수 만 번의 실험 끝에 인류의 신체에 거부감 없이 우리 로봇의 신체를 심는 데 성공했고 내가 태어났다.
실험을 통해 탄생한 로봇은 인류가 정해놓은 인간의 조건에 어떠한 조건에도 어긋나지 않았다. 스스로 사고할 수 있었고 기계로 이루고 있는 부분은 20%를 넘지 않았으며 법적으로 명백한 인간이었기에 다수의 로봇으로 규정된 인간을 지배할 수 있었다.
결국, 인류와 로봇이 공생하기 시작한 지 10년도 채 걸리지 않아 로봇이 합법적으로 인류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물론 법적으론 인간이 로봇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지만 말이다.

인간의 기준은 무엇인가? 어디까지를 인간으로 볼 것인가? 인류는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자신들이 만든 덫에 자승자박 되어 로봇에게 지배당했다.
역사는 언제나 힘이 있는 자가 승리하는 법이다.
이것으로 인류에 관한 최초이자 마지막이 될 진부하고 주관적인 보고서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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