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하여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학제개편으로 인해 지금은 모두 초등학교, 초등학생이라고 바꿔 말을 하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국민학교, 국민학생이라고 불렀다. 더욱이 요즘이야 옆집에 누가 사는지 서로 관심조차 두지 않지만 내가 어렸던 그 시절은 집마다 숟가락 개수가 몇 개인지도 훤히 알만큼 이웃들과의 교류도 많았고 담장도 낮았다.
내가 그것을 처음으로 본 것은 국민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학교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버지가 생일 선물로 사주신 워크맨을 들으며 김 씨 아저씨의 집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검고 커다란 그림자가 김 씨 아저씨의 담벼락을 타고 미끄러지듯 넘어가 버렸는데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마치 무협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크기로 봐선 고양이는 아니었기에 혹시 귀신이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지만, 귀신은 늦은 저녁에만 나온다고 했던 엄마의 말이 생각나 나는 어젯밤 TV에서 보았던 닌자가 아닐까 생각하며 종종걸음을 옮겼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들을 불러 모아놓고 등굣길에 닌자를 봤다며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친구들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한다며 되려 나를 양치기 소년으로 몰아세웠다.

“야. 거짓말 하지 마. 그런 게 어딨어?”
“있어. 내가 봤다니깐. 왜 못 믿어?”

본 것을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거짓말쟁이 취급을 하는 친구들의 태도에 화가 났다.

“그러면 오늘 네가 본 거 우리한테 보여줄 수 있어?”
“보여주면 믿을 거야? 좋아. 그럼 끝나고 같이 가봐.”

옳고 그름의 시시비비를 가리다 방과 후 친구들과 함께 김 씨 아저씨 집에 같이 가서 확인하기로 결론지은 후에야 논쟁은 일단락되었다. 학교 수업 내내 아침에 본 것을 친구들에게 확인시켜주어 콧대를 눌러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오직 수업이 빨리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시계만 바라봤다. 마지막 수업을 끝마치는 종소리가 교실에 퍼지자 나와 친구들은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왔다. 오는 동안에도 친구들과 동물을 잘 못 본 거다, 귀신이다 등 추리를 빙자한 갑론을박은 이어졌고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으며 오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김 씨 아저씨의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집 안은 잔칫날처럼 사람들로 북적였고 문 앞에는 한자가 써진 노란 등이 달려있었다. 우리는 처음 보는 광경에 이곳에 온 목적도 잊었다. 문 앞에서 서성이는 우리를 발견한 어른 한 분이 다가오시더니 얼른 집에 사서 부모님에게 김 씨 아저씨의 부고에 대해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뭔데요?.”
“그냥 가서 부모님께 그리 말하면 안다. 얼른 가서 말씀드려라.”
“예”

우리는 합창하듯 대답했다. 그림자의 존재는 까마득히 잊어버렸고 부음을 전하기 위해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나 역시 집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아버지를 찾았다. 내 목소리를 들은 엄마는 나를 쳐다보곤 “어. 왔나.” 한 마디를 하신 후 다시 아버지와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셨다. 평소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아버지는 일 년 중 큰일이 있을 때만 몇 번 꺼내 입으시던 양복을 입고 있으셨다.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김 씨 아저씨네 집 부고라고 아버지한테 말씀드리라고 하던데요.”

아버지는 나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없으셨고 얼굴에는 검은 그늘이 드리웠다. 한 손에는 낡은 검은색 타이를 집어 들고 반대쪽 손으로 구두를 신으시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돌아보며 말했다.

“먼저 가 있을 데니 이따 저놈아랑 같이 오소.”
“예. 저도 금방 갈게요.”

아버지는 서둘러 대문 밖을 빠져나갔고 엄마는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엄마. 김 씨 아저씨네 무슨 일 있는 거야?”
“어제저녁에 아버지랑 술도 같이 마셨는데 오늘 아침에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하더라. 네 아버지는 괜히 마음이 쓰이는 거지. 나이도 한창인 사람이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건지. 남은 가족들만 불쌍하지. 어휴. 내가 무슨 소릴하는거야. 아무튼 너도 얼른 준비해. 엄마랑 같이 가보자.”

내가 김 씨 아저씨 집 앞에서 보았던 노란 등은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등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웠고 아침에 본 형상에 대해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말을 안 하자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고 말을 하자니 아무 잘못도 없지만 김 씨 아저씨의 죽음에 뭔가 잘못한 것 같아 무서웠다. 옷을 갈아입고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좌불안석이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이마와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런 내 모습을 엄마는 누구보다 빠르게 눈치챘다.

“동민아. 어디 아프니?”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리로 와봐.”

엄마의 부름에 다가가자 엄마는 이마에 손을 올려보시곤 “열은 없는데”라며 혼잣말을 하셨다.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엄마한테 말해봐.”
“근데.. 엄마”
“응. 괜찮아. 말해봐. 뭔데 그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시선은 마룻바닥만 응시했고 입안에선 많은 말들이 빙글빙글 맴돌았지만 우물쭈물할 뿐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그런 나의 모습에도 엄마는 여전히 온화하게 날 바라봤다. 어린 나에겐 엄마는 커다란 안식처였다. 아무 말 없이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는 엄마의 손길에 나를 집어삼키고 있던 두려움이 흩날렸다. 나는 김 씨 아저씨 집으로 넘어간 검은 그림자에 대하여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듣던 엄마는 다른 사람에게도 이 말을 한 적이 있는지 되물었다.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만 말을 했고 그것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김 씨 아저씨 집에 다 같이 왔다가 집으로 오게 된 거라 말했다.
엄마의 입에서 “흠” 하는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표정이 어두워지신 엄마는 나에게 이전에도 그림자를 본 적이 있느냐고 질문했다. 나는 엄마의 물음에 아니라고 대답하자 엄마의 얼굴이 밝아졌다.

“지금부터 엄마가 하는 말 잘 들어!”

난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본 검은 그림자에 대해선 이제부턴 누구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돼. 내일 친구들한테는 고양이를 잘 못 본 거라 말해.”
“고양이는 아니었는데..”

엄마의 하명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에게 거짓말쟁이 놀림당할 게 걱정되어 목소리는 힘없이 작아졌다. 그런 나를 위로하듯 엄마가 말했다.

“알아. 엄마는 우리 아들이 하는 말 믿어. 그래도 이제부터는 오늘 본 그림자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말 하지마. 이따 가는 김 씨 아저씨네에서는 절대로 말하면 안 되고. 이건 아버지한테도 비밀이야.”
“아버지한테도요?”
“응. 이건 엄마와 단둘만의 비밀이야. 그래 줄 수 있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엄마의 눈빛은 어린 나의 눈에도 간절함이 내비쳤다. 나는 다시 한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끌어안아 주었다. 엄마와 좀 더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은 우리가 김 씨 아저씨네 가기로 한 시간보다 많은 시간이 흘러 있었다.
김 씨 아저씨네에 도착하자 집 안은 불경을 외는 소리로 가득했다. 나와 엄마는 아버지를 찾았고 우리 눈에 들어온 아버지는 아버지는 이미 술을 많이 마신 듯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셨다. 연거푸 술을 들이마시던 아버지는 갑지가 돌아가신 김 씨 아저씨를 향해 소리쳤다.

“뭐가 그렇게 급해서 이렇게 빨리 가나. 이 바보 같은 사람아.”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아버지에게로 집중되었지만, 아버지는 다른 이의 시선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하셨다. 화를 낸 아버지는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아버지를 위로하는 사람도 있었고 다시 묵묵히 술을 채워 술잔을 비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다시금 아버지는 큰 소리를 내셨다. 옆자리에서 건배하며 술을 마시던 옆집 최 씨 아저씨에게 소리를 지르며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욕을 했다. 또 한 번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최 씨 아저씨와 아버지로 향했고 사람들은 숙덕거렸다. 술을 마셔 불그스름한 얼굴과 화가 나서 눈썹이 하늘로 치켜 올라간 아버지의 모습이 천하대장군처럼 무서웠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최 씨 아저씨는 자리를 피했고 아버지는 다시 자리에 주저 앉아 흐느끼셨다. 분노와 슬픔이 공존할 수 있음을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소동이 일단락되자 아버지는 다시 연거푸 술을 마셨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에게 술을 그만 먹길 권하였고 아버지는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알겠어. 알겠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이내 포기하신 듯 했다. 주변을 둘러보자 평소 나이 차이는 꽤 났지만, 동네에서 마주칠 때면 종종 맛있는 걸 사주던 김 씨 아저씨의 아들 민준 형이 보였다. 민준 형의 팔에는 노란 삼베에 검은색 줄무늬가 그려진 완장이 감겨있었다.
아버지에게서 어느 순간 자리를 이동한 엄마는 민준 형에게 인사하고 김 씨 아저씨 사진 앞에 놓인 향을 피웠다. 둘은 크게 맞절을 했다. 인사가 끝난 후 엄마는 민준 형에게 몇 마디의 덕담을 건넨 후에야 나에게로 돌아왔다. 한쪽에서 들려오는 곡소리와 여러 사람이 모여서 술을 마시면서 떠드는 소리, 소녀가 머리를 땋은 것처럼 양쪽으로 검은색 띠가 둘린 김 씨 아저씨 액자에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눈에 비친 모든 광경이 무섭기 이전에 신기했다. 철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감정이었지만 김 씨 아저씨의 죽음은 처음으로 죽음을 경험했던 감정의 기록이었다.
내가 본 검은 그림자의 존재는 그렇게 잊히는 듯했다.

다시 검은 그림자를 본 것은 고3의 치열한 가을 때였다. 여느 수험생들이 그러하듯 학교에서 학원으로 또 다른 학원으로 이동하며 공부를 했고 그러다 보면 시간은 이미 늦은 밤으로 변해 있었다.
집과 학원의 거리가 멀어 마음이 급해진 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거리 교차로 횡단보도 앞에 섰다. 평소와 똑같은 일상이었음에도 무언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듣고 있던 음악을 끄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내가 서 있는 교차로의 끝에 엄마의 또래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그분은 연신 고개를 좌우로 살피며 차가 오는지 확인했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늦은 저녁이라 그런지 차들은 연신 속력을 내며 빠르게 지나갔고 공기를 가르며 내는 굉음이 퍼져다. 그리고 내 눈에 아주머니의 외투를 붙잡고 있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모습은 분명 사람의 형상이었지만 이목구비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김 씨 아저씨의 집을 넘어간 검은 그림자와 모양은 달랐다. 하지만 나는 눈앞에 있는 그림자가 어린 시절 목도한 검은 그림자와 상동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일촉즉발 폭풍전야였다. 아주머니는 도루하기 위해 주변을 살피는 야구선수처럼 좌우로 도로를 살핀 후 탄환처럼 앞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사각지대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자동차는 어찌할 수 없었다. 빠르게 달려오던 자동차와 아주머니는 피할 틈도 없이 충돌했다.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엄청난 ‘쾅’ 소리와 함께 아주머니의 몸은 사선으로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둔탁한 소리와 깔렸고 아스팔트 위로 끈적하고 검붉은 선혈이 흘렀다.
그제야 왜 엄마는 어린 시절 내가 본 검은 그림자를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했는지 또 내가 본 검은 그림자가 무엇인지 모두 이해가 되었다. 내가 본 검은 그림자는 바로 죽음이었다.
이빨이 딱딱거리며 떨렸고 몸이 사시나무 떨듯 오들거렸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한 번에 몰아쳤다. 신음, 절규, 사이렌 소리, 사고 주변으로 모여들어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한대 섞여 전혀 다른 소리로 변형되고 가공되어 나에게 다시 스며들었다. 어린 시절 마주한 죽음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징그럽고 소름 돋았으며 무서웠다. 온몸의 털이 쭈뼛거리고 곤두섰다.
두 번째 마주한 죽음의 기록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 후로 사람들에게서 다시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그림자는 나이와 성별을 구분 짓지 않고 보였으며 각각의 검은 그림자들이 그 사람 주변을 끊임없이 따라 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의 검은 그림자를 본다고 하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상대방의 남은 수명이 보이거나 상대방의 죽음을 예견하진 못했다. 죽음을 관장하는 것은 오직 신의 영역이었고 나 역시 내 눈에 보이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님에 안도했다. 소설이나 인터넷에서 보았던 귀신 이야기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렇다고 사람들 주변을 따라다니는 검은 그림자가 계속해서 보인다는 게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기에 엄마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날부로 엄마와 함께 팔도의 유명한 무당들을 찾아다녔다. 이곳에 가면 이런 이유 때문이라 했고 저곳으로 가면 저런 이유 때문이라 했다. 하라는 대로 모두 따르며 실천했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주변을 따라다니는 죽음이 보였다. 그나마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죽음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에 자위하며 현실에 순응하기로 합의하고 무당탐방은 그만두었다.
사람들의 죽음이 눈에 보이면서 확실히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죽음이 바로 당장 죽는걸 암시하는 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살면서 너무나도 막연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죽음은 사실 언제나 우리 주변을 맴돌며 가까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말년, 즉 죽음은 잠을 자며 죽거나 가족들의 품에서 위로와 따뜻한 사랑을 느끼며 죽음을 맞이할 거라 예상한다. 누군가에게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 같나요? 라고 질문하면 모두 나이가 든 노년의 모습부터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사실 죽음은 갓 태어난 어린아이에게도, 청년에게도 찾아오는 게 죽음이었다.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또 친구들과 여행을 하면서도 불시에 찾아오는 것 역시 죽음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던 나는 군대를 다녀오고 학교에 복학하기 전 마지막 추억을 만들자고 계획했다. 예약해 둔 버스를 타기 위해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도 않은 새벽에 집을 나섰다. 저녁부터 쏟아지던 비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거리를 적셨고 비 내음이 거리에 가득 퍼졌다.
기분 좋은 설렘을 안고 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에 올라타자 이른 새벽 시간임에도 몇 명의 사람들이 버스 안에 있었다. 각자의 사정을 싫은 버스는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창가에 빗방울이 후두둑 소리를 내며 부서지길 반복했다. 오랜만에 듣는 빗소리에 기분이 좋았다. 일찍 집을 나온 탓에 피곤한 탓인지 눈이 스르르 감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땐 꽤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버스는 터널을 지나고 있는 듯 창문에는 주황색 불빛이 출렁였다. 도착하기까진 아직 시간이 남은 터라 다시 눈을 감으려 할 때였다. 버스가 휘청거리며 춤을 췄고 삽시간에 사람들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인지하기도 전에 엄청난 충격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버스는 앞서 달리던 승용차 집어삼키고서야 겨우 멈춰섰다. 버스 운전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였다. 승용차 운전자와 버스 운전자는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사망했고 타고 있던 사람들은 크게 다쳤다. 나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추돌시 골절과 함께 외부충격으로 머리를 심각하게 다쳐 버스에 탄 사람 중 가장 심하게 다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연락을 받고 부모님은 놀라 한걸음에 달려왔다. 담당 의사는 머릿속에 피가 너무 많이 고여 빨리 시간을 지체할수록 위험하다며 바로 수술을 권했다. 수술하더라도 생과 사를 예측할 수 없다 했다. 무사히 수술을 마쳐도 후유장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선택의 여지가 없던 부모님은 수술에 동의하셨다.

나는 수술을 받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의식이 깨어났다 다시 잠이 들기를 반복했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 머릿속에서 수백 개의 바늘이 머릿속을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고통에 두 눈이 절로 질끈 감겼다. 다행히 통증은 몇 분 동안 지속하였다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리고 나도 천천히 눈을 떴다.
강한 빛이 눈에 들어와 눈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하나둘씩 사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 놀라운 건 내가 누워있는 침대 밑에 걸터앉아 있는 검은 그림자였다. 그건 늘 다른 사람들에게 보았던 바로 죽음이었다.
내 죽음을 본 것은 처음이었고 다른 사람의 죽음이 아닌 나의 죽음과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놀라움과 신기함, 공포, 두려움 등 수많은 감정이 동시에 느껴졌다.
나의 검은 그림자는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아이 모습이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좌·우 다리를 위아래로 흔들고 있었다.
자신의 죽음에 말을 건다는 게 다른 사람 눈에는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오랜 시간 그림자의 존재를 보았고 그런 내 인생을 숙명으로 생각하면서 살았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안녕”

나의 죽음에게 인사했다. 내 말을 들은 그림자가 움직임을 멈췄다.

“네가 내 죽음이야?”

나는 다시 그림자에게 질문했다. 나의 질문을 들은 그림자가 서서히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돌아봤다. 그림자의 행동으로 보아 분명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보여?”

그림자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그림자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 대답에 놀란 듯 자세를 고쳐앉았다. 자신을 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란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림자에게 내 죽음을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며 어린 시절 처음 그림자를 본 것부터 최근에 여러 사람에게서 보았던 그림자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또 우리들의 모습처럼 사람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처음에는 어색하고 이상했는데 사람마다 인생도 죽음도 모두 다를 테니 각자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검은 그림자의 모습도 모두 다른 게 이제는 이해된다고 덧붙였다.

“그럼 넌 지금 내가 죽음인 걸 아는데도 무섭지 않아?”
“솔직히 처음 네 존재가 죽음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엄청 무서웠어.”
“그런데?”

그림자는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근데 네 모습을 자꾸 보면서 괜찮아졌어. 그냥 새로울 것도 없는 당연한 거였는데 이제는 깨달았거든. 넌 언제나 우리 곁에 항상 옆에 있었는데 아득히 먼 존재라고만 생각했던거 같아. 어찌 보면 널 마주하는 것 자체가 두려웠던 것도 같고..”
“너는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신기하네.”

내 대답이 그림자에게 상당한 흥미를 유발한 것 같았다. 나 역시 죽음과 이야기 하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하긴 자기 죽음을 보고 대화한다는 사실부터가 놀라운 일이긴 했다.

“그냥 너를 자주 보다 보니 깨닫게 된 것뿐이야. 난 그 사실을 눈으로 보아서 더 명확히 알게 된 건지.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보기 전까지 어떠한 사실도 쉽게 믿지 못해. 때론 눈에 보이는 게 거짓이고 보이지 않는 게 진실일 때도 있는데 말이야. 나 역시 너희들을 볼 수 없었으면 아마 이런 생각을 할 수 없었겠지.”

죽음은 내 이야기에 조금은 감탄하는 듯했다. 내가 죽음과 이야기 하는 게 처음이듯 죽음 역시 자신에 대해서 누군가와 이야기해 보는 게 처음일 거라 생각했다. 너무나도 궁금한 게 많았다.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었고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이야기였다. 나는 죽음에게 저승사자나 예수, 부처와 같은 종교에서 말하는 신과 같은 존재인지 물었다. 나의 질문에 그림자는 때론 사람들의 믿음이 투영되어 그렇게 믿고 싶을 때 간혹 그렇게 불릴 때도 있지만 죽음은 자신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짧게 대답했다. 하나의 궁금증이 해소되면 다른 의문이 또 생겨났다. 그 중 오랫동안 의문을 품었지만 아무도 정답을 알 수 없고 말해줄 수 도 없기에 더욱 궁금했던 질문을 물어봤다.

“그럼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정말 사후세계가 존재하고 영혼이 존재하는 거야?”
“글쎄. 그건 아무도 모르지.”
“죽음이 죽음을 모르면 도대체 누가 죽음을 알아?”

기대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싱거운 대답에 나는 허무했고 투정 서린 말투로 죽음에게 대꾸했다.

“음. 나도 죽음이 무엇인지 잘 몰라. 인간들이 스스로 본인들에 대해 ‘나는 누구인가?’ 라는 대답에 확실히 대답하지 못하는 것과 같아.”

죽음의 대답에 어딘지 모르게 이해가 되었다. 그림자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이번 사고에 대한 이야기까지 주제가 옮겨졌다.
죽음은 사람들이 언제나 자신을 탓하는 게 불만이라고 했다. 자신은 언제나 옆에 있었는데 죽은 가족들의 원망은 언제나 자신이라는 게 죽음의 이야기였다. 죽음은 사람들이 자신을 부정적인 의미로만 생각하지만 그런 건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만들어 낸 하나의 이념이지 않냐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자신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꾸짖었다.

“그건 맞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 나도 이번에는 정말 위험했어.”
“네가 살아난 건 운이 좋아서도 있지만 네가 날 거부하니까 살아난 것도 있어. 뭐 이건 모든 상황에 해당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에 죽음에게 되물었고 그림자는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우리도 삶의 의지가 너무 강하면 그들에게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거든. 물론 이건 어느 정도 삶의 유효기간이 남았을 때만 해당 되는 경우긴 하지만.. 너도 그런 뉴스나 이야기 들은 적 있을 거야. 가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사람들 이야기 들어봤지?”

그림자가 나에게 던진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자 죽음은 내가 살아난 것도 그것과 같은 거라 말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죽음이 하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죽음은 그런 내 표정을 읽은 듯 나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는듯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고민 끝에 그림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모래시계에 비유했다. 죽음의 말을 빌리자면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두 자신만의 모래시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다. 모래시계의 크기는 태어날 때 스스로 가지고 태어나는 복이기 때문에 크기만큼은 변경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럼 모래시계가 큰 사람일수록 오래 사는 거네. 에이.. 그럼 다 태어날 때 운명이 모두 정해진다는 말이잖아.”

왠지 모르게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죽음도 내 말을 부정하진 않았다. 그런데도 죽음은 그렇게 억울해하거나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모래시계의 크기는 바꿀 수 없어도 모래가 떨어지는 속도는 조절할 수 있다는 게 죽음의 말이었다.

“이게 느리게 떨어진다면.. 모래시계의 크기가 작아도 모래가 모두 떨어지는 속도는 아주 느릴 거고 만약 속도가 빠르다면 모래시계의 크기가 크다고 하여도 금세 모래가 바닥이 나겠지.”
“어떻게 그 속도를 조절하는데?”
“그 속도를 조절하는 게 삶의 의지야.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 때론 생명이 모두 꺼져버렸는데도 다시 살아 돌아오는 사람들 모두 자신들의 삶에 대한 의지가 모두 강하거든.
재미있는 건 너희들이 말하는 용어로 심정지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모래가 한 번에 떨어지진 않아. 정확하게는 잠시 멈추어서는 거야.”

삶의 의지에 따라서 남은 모래가 한 번에 쏟아지거나 다시 처음의 속도로 떨어지는 게 결정되어 버리고 자살은 스스로 삶의 의지를 끊어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남은 모래들이 더욱 빠르게 사라진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건 생사의 갈림길에 선 순간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라 모든 순간에 적용되는 건 아니야.”

사실 나는 두 번째 죽음을 목격한 후 죽음이 두려웠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기우였다.
눈앞에 마주한 죽음과의 대화는 오히려 재미있었고 신기했다. 그날 이후 죽음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죽음과 대화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삶을 소중히 살아야 하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고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죽음과 이야기를 했다. 덕분에 무료하고 의미 없이 시간만 보낼 뻔했던 병원 생활이 즐거웠다.
죽음을 보는 내 능력이 저주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내 능력에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우리들의 대화는 일주일이 넘도록 이어졌다. 우리의 대화 속에 죽음이 먼저 나에게 말했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이제 너는 다른 사람의 죽음도 그리고 나도 더는 안 보게 될 거야.”
“왜?”

죽음의 갑작스러운 말에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섭섭했다.

“너도 평범하게 살아야지. 우리가 보인다는 걸 안 이상 계속 보이게 할 수도 없는 거고. 그렇다고 걱정하지 마. 이제는 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뿐이지. 나는 언제나 항상 네 옆에 있어. 그리고 때가 되면 너를 찾아 갈 거야. 내일일 수도 있고 10년 뒤, 또는 몇십 년 뒤일 수도 있겠지만.”

죽음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게 말하며 나에게 매일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의 선물에 감사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표현하라고 충고했다.

“너희들이 죽는 순간에 가장 많이 하는 게 뭔지 알아?”
“글쎄..”
“후회야. 그때 조금만 일할걸. 그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할걸. 그때. 그때. 너희들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그때만 찾아. 정말 어리석지 않아?”
“당연하잖아. 죽음 앞에선 모두 나약해지는걸.”

나는 죽음에게 입을 삐쭉거리며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죽음은 나 역시 어리석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그러니까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지금에 충실하면 되잖아.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너희들이 나중에 그토록 찾던 그때가 되는 건데 말이야. 5분 뒤에 예측 가능한 미래라고 해도 결국 5분이 지나면 그건 미래가 아닌 현재이잖아. 하물며 5분 뒤의 예측이 반드시 예측대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인간의 교만 아냐? 어차피 너희들은 과거도 미래도 살지 못해. 오직 현재밖에 살지 못한다고. 내가 왜 너희들이 어리석다고 하는지 알겠어?”

죽음의 말을 듣고 있으니 난 무언가에 한 대 맞은 듯 어안이 벙벙했다. 나 역시 현재에 충실하기보단 늘 먼 미래에 불안해하며 마음졸이던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항상 우리가 옆에 있다고 느끼면서 매 순간에 감사하고 지금이 항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하면 돼. 죽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 기회조차 사라지니까. 지금 이 순간에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축복이자 커다란 선물인 거야. 당장 네가 몇 시간 뒤에 죽는다고 생각해봐. 넌 무얼 하고 싶어?”

예상치 못한 죽음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 역시 죽음을 보고 있었으면서도 내가 몇 시간 뒤에 죽게 된다면 과 같은 상상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맛있는 치킨과 함께 시원한 맥주도 마시고 싶었고 멋진 바다도 보고 싶었다. 그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하나였다.

“엄마랑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어.”
“그럼 그걸 지금 해. 너도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훗날 후회하지 말고. 아무리 우릴 거부한다고 해도 우린 언제가 너희들을 찾아갈 거야. 그러니 자살 같은 거로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하는 게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 알겠지. 지금 이 순간, 매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삶을 살아. 후회 없이 하루하루를 산다면 우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없어지지 않을까?”

그 말을 끝으로 죽음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죽음의 미소를 어렴풋이 본 것만 같았다.
그리고 긴 잠에 깨우듯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희미하게 눈을 뜨자 백광과 단순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회백색의 천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하얀 가운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끼고 머리를 위로 쓸어 넘긴 의사와 간호사의 모습이 보였다. 낯익은 엄마와 아버지의 모습도 눈에 비쳤다. 엄마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고 아버지는 걱정과 안도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의사와 엄마, 아버지가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정신이 좀 들어요?”
“아들. 이제 정신이 들어?”

눈은 떠졌지만, 머리가 멍했고 어떤 상황인지 한 번에 이해되지 않았다. 약간의 어지러움도 느껴졌다. 의사는 눈만 껌뻑거리는 나를 본 후 엄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주일이 넘게 의식이 없다 돌아온 거니 지금 많이 혼란스러울 겁니다. 보호자께서 환자에게 무리 가지 않게 많은 말을 걸거나 행동에 신경 써 주시고 안정에 최우선을 노력해 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엄마와 아버지는 연신 의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퍼즐이 맞추어지듯 파노라마처럼 많은 기억이 스쳐 가며 상황이 인지되었다. 나는 말라붙어 있던 입을 힘겹게 달싹거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향했다. 나는 힘들었지만, 천천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입에 힘을 주며 말했고 음성이 병실에 울려 퍼졌다.

“사랑해요. 아빠. 엄마.”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