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꿈

내 이름은 ‘순이’다. 요즘 듣기에는 촌스럽게 느껴질 리 몰라도 나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었고 그 시절에는 그렇게 촌스럽게 느껴지는 이름도 아니었기에 나는 마음에 들었다. 부모님은 농업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셨는데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여도 농사일은 태산처럼 많았다. 당연히 부모님이 나에게 신경을 써줄 겨를은 부족했고 나는  J와 자주 어울려 놀았다. J의 집 역시 우리 집처럼 농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집이었기에 J의 역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J는 말이 많은 친구는 아니었다. 언제나 재잘거리며 말을 하는 건 내 몫이었고 J는 내 말을 들어주는 입장이었다. 여리고 내성적인 성격의 J는 활달하고 왈가닥한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이었지만 우리는 아귀가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처럼 서로의 반대되는 모습을 좋아했다.
특히 J는 어딘지 모르게 어른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그런 모습 때문인지 나는 J에게 많이 기대고 의지했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시골 마을에서 나와 J가 놀 거리는 많지 않았다. 동네 뒷산을 올라가서 개울가에서 가재를 잡거나 고구마와 감자를 뒷 마당에서 구워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그중에서도 우린 마을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볼 수 있는 바다에서 노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바닷가 특유의 짠 내가 섞인 해풍이 불어오면 속이 뻥 뚫리는 것처럼 상쾌해지는 것 같았고 파도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면서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모래성도 짓고 조개껍데기도 실컷 줍다 보면 하루해는 어느덧 뉘엿뉘엿 넘어가곤 했다.

그날은 J와 함께 바닷가에서 바지락을 잡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나는 커다란 양동이와 호미를 챙겨 여느 때처럼 마을 입구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서 기다렸다. 시원한 그늘막에 앉아 있으니 여름의 더위마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무에 기대고 앉아서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를 주워 공기놀이를 하며 J를 기다렸다.
손등에 올라간 5개의 돌멩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고 있을 때 저 멀리 “순이야” 하며 나를 향해 뛰어오는 J의 모습이 보였다. J의 모습을 보자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손등에 올려져 있던 돌멩이가 바닥으로 툭툭 소리를 내며 굴러떨어졌다. 엉덩이에 묻은 흙을 손으로 툭툭 털자 흙먼지가 날렸다. J에게 다가가자 J는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는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왜 이리 뛰어왔어?”
“너 기다리고 있을까 봐.”

거친숨을 몰아쉬면서도 J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J의 웃는 모습을 보니 나 역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J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와 J는 길가에 핀 봉선화를 꺾어 돌로 빻았다. J는 내 모습을 보고 뭘 하는 거냐고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어봤다.

“이거 물들이고 겨울에 첫눈이 올 때까지 봉선화 물이 남아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져.”
“정말?”
“응. 우리 엄마가 그러셨어. 우리 서로의 엄지발톱에 하자.”

나는 빻은 봉선화에 가져온 소금을 약간 섞은 후 나와 J의 발톱 위에 올리고 헝겊으로 둘둘 감았다. J는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나도 J에게 무언가를 해준 것만 같아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바닷가로 향했다.
마침 바닷물이 썰물 때여서 물 밖으로 드러난 갯벌이 우리를 반겼다. 부드러운 모래 점토질을 손으로 만지니 부드러운 진흙이 손등을 간지럽혔다. J역시 간지러운지 까르르 웃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지락을 캐며 장난을 쳤다. 가져온 양동이에는 바지락이 가득했고 옷과 얼굴에 진흙이 잔뜩 묻어있었다. 우린 서로의 얼굴을 보며 다시 큰 소리로 웃었다.

“J야. 우리 진짜 많이 잡았다.”
“응. 진짜 많이 잡았다.”
“이제 가자. 슬슬 물도 다시 들어오고 늦게 가시면 부모님 걱정하신다.”
“그러자.”

물은 이미 무릎까지 차오르고 있었기에 우리는 서둘러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바지락을 챙겨 집으로 향할 때였다. 멀리서 거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당시는 워낙 자동차를 본다는 것 자체가 힘든 시기였기도 했지만 나와 J가 사는 동네는 사람의 인적이 드문 외지였기에 타지 사람을 보는 일도 극히 드문 일이었는데 이론 동네에 자동차를 본다는 사실이 너무나 의아하고 신기해 나와 J는 넋을 보고 바라봤다. 옅은 녹색으로 도색된 자동차는 일본의 국기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고 뒤쪽에는 트럭처럼 짐을 싫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 공간에는 짐 대신 우리 또래의 아이들이 타고 있었다.
자동차는 도로가 고르지 못한 탓인지 덜컹거리며 점점 우리 쪽으로 다가왔고 우리는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시선을 고정했다.
우리 앞에 멈춰 선 트럭에서 일본 군인 2명이 내렸다. 군청색의 상의와 폭이 넓은 하의를 입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신발을 신고 있었다. 허리에는 가죽띠로 둘러매고 한쪽에는 칼을 차고 있었으며 왼쪽 어깨에는 한 눈에도 위협적인 총을 둘러메고 있었다. 군인 2명은 챙이 짧은 모자를 쓰고 있었고 눈매는 먹이를 잡아먹으려는 맹수처럼 날카로웠다.
차에서 내린 군인 두 명이 우리에게 터벅터벅 다가왔다. 나와 J는 두려워 그들이 걸어오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리자 우리 향해 걸어오던 그들은 갑자기 전속력으로 달려와 우리의 머리를 낚아챘다. 고개가 뒤로 젖혀졌고 고통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나와 J는 갑자기 나타난 군인들이 왜 이러는지 알지 못했다. 손에 쥐고 있던 양동이를 바닥에 떨어지며 바지락이 나뒹굴었다.

‘바지락 어머니 가져다드려야 하는데…..’

바닥에 나뒹구는 바지락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할 틈도 잠시 군인들은 우리를 자신들이 타고 온 트럭으로 데려간 후 뒤쪽 짐칸에 나와 J를 강제로 욱여넣었다. 우리가 차에 실리자 목적을 달성한 듯 자동차는 시커먼 매연이 뒤쪽으로 뿜어져 나왔고 거친 엔진음을 내며 출발했다.
차에 먼저 타고 있던 또래 친구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쏠렸다. 낯선 이의 시선이 불편했다. 고개를 돌려 우리가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니 그곳에는 널브러진 바지락이 시선에서 점점 멀어질 뿐이었다. 그때 내 나이 14살이었다.
어디로 향하는지 또 왜 우리가 이 트럭에 타야만 했는지 그 어떤 것도 속 시원히 알지 못한 채 우리는 내달리는 트럭에 실려 이동하고 있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이 상황이 너무 무서워 J의 품에 안겨 연신 울었다. J는 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아무 일도 없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했고 J의 목소리와 손길을 느껴지자 나도 조금은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J의 몸은 입에서 나오는 말과는 다르게 바들바들 떨렸다. 덜컹거리는 트럭만큼 내 마음은 불안했고 두려웠다.

한참을 달리던 트럭이 뿌연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멈추어섰다. 도착한 곳은 커다란 항구였다. 군인들은 다시 차에서 내려 빨리 트럭에서 내리라고 소리쳤다. 한 명씩 겁에 질려 트럭에서 내렸다. J와 나도 트럭에서 내렸다. 그때 한 아이가 머뭇거리며 내리자 군인이 빨리 내리지 않는다고 발로 걷어찼다. 트럭에서 무방비로 떨어진 어린 소녀는 이가 깨지고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군인들은 소녀의 상처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쓰러져 있는 소녀를 다시 일으켜 세운 후 우리를 포함하여 트럭에서 내린 다른 소녀와 함께 우리를 끌고 가 커다란 배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배 안에는 이미 더 많은 또래의 친구들이 타고 있었다. 무섭다고 버티는 소녀들에게 날아오는 건 주먹과 발길질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와 J는 더욱 겁을 집어먹고 군인들이 하라는 데로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모두 배에 올라타자 배는 기적 소리와 함께 출발했다. 우린 배를 타고 한참을 이동했다. 갑판 위에는 군인들이 총칼을 들고 왔다 갔다 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밖에 나가볼 엄두는 내지 못했다. 배가 도착하기 전까진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또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 배 안에 있는 소녀들은 모두 비슷한 나이의 또래들이었기에 금세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산, 진주, 마산, 안동 그리고 내가 살던 울산까지 어린 소녀들의 고향은 다양했다. 나와 J처럼 갑자기 일본군이 나타나서 끌려온 사람도 있었고 한국 사람이 일본 공장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며 자신을 이곳으로 안내했다는 소녀도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배가 우리를 지옥으로 인도하는 배일 줄 누구도 알지 못했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을 뜨니 어느덧 배는 일본의 항구에 도착해 있었다. 다시금 배에서 내려 일사불란하게 트럭에 올라타자 트럭은 우리를 싣고 출발했다. 트럭이 멈추어 선 곳은 일본군대가 모여있는 막사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1평이 조금 넘는 방에 우리를 한 명씩 밀어 넣었다. 나와 J는 이곳으로 끌려온 후 처음으로 떨어졌다. 방 안으로 들어가니 판자로 지어져 있는 방은 어린 내가 누우면 꽉 찰 정도로 작고 비좁았다. 나는 J와 바지락을 주어 부모님이 저녁에 돌아오시면 같이 맛있는 저녁을 먹으려고 한 것뿐인데 왜 내가 이런 낯선 곳에 끌려와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내 방에 예고도 없이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그는 방안으로 들어서며 히죽거렸다.

“와타시가 하지메때다! (私が初めてだ. 내가 처음이다.!)”

갑자기 나타나 누런 이를 보이며 다가오는 일본 군인을 보자 겁에 질린 나는 뒷걸음치며 물러났다. 그러나 비좁은 방 안에서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일본 군인은 나를 향해 연신 미쓰코라고 불렀다.

“나가. 미쓰코가 누구야. 나가라고.”

나는 소리를 지르며 그가 다가오지 못하도록 몸을 바둥거렸다. 그러자 그는 내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갈겼다. 성인 남성이 휘두른 주먹은 머리가 흔들릴 정도로 아프고 무서웠다. 두려움에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그제야 만족한 듯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하나, 둘씩 벗었고 모든 옷을 벗고 전라의 상태로 내 앞에 섰다. 태어나서 남자의 알몸을 보는 게 처음이었고 지금 나에게 벌어지는 상황이 무서웠다. 이빨이 딱딱거리며 부딪쳤고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살려주세요. 제발요. 잘못했어요.”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눈앞에 나체로 서 있는 일본 군인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두 손을 싹싹 빌었다. 그런데도 그는 연신 미쓰코라는 말과 함께 의미를 알 수 없는 일본어를 반복하며 내게 다가왔다. 무서워서 다시금 소리를 지르자 어김없이 얼굴에 주먹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벗은 양말을 뭉쳐 내 입에 욱여넣었다.
그에게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성인 남성의 힘을 어린 소녀가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빨이 부러져 물고 있는 양말이 붉게 물들었다.
바닥에 쓰러진 내 위로 헤벌쭉 거리는 일본 군인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리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처음 보는 사내에게 순결과 이름을 잃었다. 그는 관계가 끝날 때까지 나를 미쓰코라고 불렀다. 밖에서는 “하야쿠시로. 하야쿠 (早くしろ, 早く. 빨리해, 빨리!) “라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남자의 관계가 끝나자 다시 곧이어 다른 일본 군인이 들어왔고 같은 일이 반복해서 이루어졌다. 그날 하루에만 셀 수없이 많은 남자가 내 몸을 더듬고 유린했다.
밑에서는 피가 흘러나왔고 서슬 퍼런 칼날이 몸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팠다. 늦은 저녁에 돼서야 일본군의 출입이 잦아들었다.

J는 지금 어떨까. 어찌 되었든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나는 아픈 배를 움켜잡고 막사를 나와 J를 찾았다. J는 의식을 잃고 윗옷이 벗겨지고 치마는 찢어진 채 맞은편 막사에서 쓰러져 있었다. 나는 눈에 보이는 천으로 J를 감싼 후 쓰러져 있는 J를 일으켰다. J는 물먹은 쌀가마처럼 몸이 축 늘어져 있어 무거웠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기회는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더욱이 내일이면 또다시 이 지옥을 견뎌야 했다. 그것만큼은 죽기보다 싫었다. 힘을 주어 다시 J를 일으켜 세웠다. 갑자기 힘을 준 탓인지 밑에서 나온 하혈은 종아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겨우 일으켜 세운 J를 어깨에 들쳐메고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때 배에서 만나 같이 트럭을 타고 온 소녀 한 명이 반 나체의 상태로 우리를 지나쳐 밖으로 튀어 나갔다. 막사 안에서 볼 땐 알 수 없었는데 막사 주변에는 많은 일본군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멀어져가는 소녀를 잡으려 하지 않았고 자신들끼리 기분 나쁜 웃음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상황을 지켜보던 일본 병사 한 명의 총구가 소녀를 향했고 그는 지체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소리와 퍼지자 달려가던 나체의 소녀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잠시 뒤 사이렌 소리가 짧게 울렸다. 소리를 들은 막사에 있던 어린 소녀들이 모두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의식을 잃었던 J도 의식이 돌아와 있었다.

다른 군인들과는 다르게 가슴에 휘황찬란한 배지와 일반 장병과는 달리 고급스러운 군복에 달린 계급장이 그가 장교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쓰러진 소녀 쪽으로 걸어가 소녀의 머리를 군홧발로 짓밟은 채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너희들을 죽이는 것은 개, 돼지를 죽이기보다 쉽다. 대 일본 군인과 잠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하라.”

장교는 근엄하게 말을 마치곤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 다시 한번 소녀의 머리에 발사했다. 차갑게 식어버린 소녀를 장교가 발로 굴려버리자 대기 하고 있던 병사가 빈 수레를 끌고 나타났다. 수레에 소녀를 실은 병사는 막사 밖에다 소녀를 내다 버렸다. 당연히 죽은 소녀를 위한 장례는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 저들에게 우리는 개보다도 못한 존재인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탈출에 대한 생각을 포기했다. 생각보다 삼엄한 경비도 문제였지만 어딘지도 모르는 타지에서 부모님도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순 없었다.

내 선택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아침에 나누어 주는 무 절임으로 굶주린 배의 허기를 겨우 달래면 수많은 일본 군인들이 막사 앞으로 늘어섰고 어김없이 그들의 성 노리개로 전락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지옥이었다. 일본 군인들 앞에서 우린 철창 안에 갇힌 동물들과 다른 바 없었다. 저들의 모습만 봐도 구역질이 났다. 먹은 게 없어 아침에 먹은 절인 무와 노란 위액을 게워냈다. 저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껄껄 웃었다. 내 눈에 비친 그들은 악마 그 자체였다.
늦은 저녁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면 온몸이 아프면서 엄마 생각이 났다. 특히 밑에 와 다리가 너무 아팠는데 온종일 뒤집어진 개구리처럼 다리를 오므리고 있었기에 그런 것 같았다.

‘엄마는 얼마나 날 걱정하실까?’

갑자기 사라진 나를 찾아온 동네를 돌아다니실 엄마 생각에 눈물이 쏟아졌다. 울음소리를 일본 군인이 들을까 봐 이를 악물며 소리 죽여 울었다. 그렇지만 나의 작은 울음소리는 같은 고통을 느끼는 친구들에게는 우레와 같이 크게 들렸던 것 같았다.
막사 안이 내 울음소리를 시작으로 다른 이들의 울음소리가 하나, 둘씩 퍼져 나갔다. 누구 하나 마음 편히 울지 못하고 이 악물며 흐느끼는 소리만 새어 나올 뿐이었다. 그리고 울음소리 속에는 J의 울음소리도 섞여 있었다.
반복된 강압적 성관계가 이어지고 다시 저녁이 찾아온 후 다음날 또다시 반복된 성관계와 저녁으로 이어지는 하루하루가 반복되었다. 우리에겐 희망은 없었다.

원치 않는 일방적인 성관계였기에 나는 그들과 관계를 할 때마다 저항했고 그럴 때면 나에게 돌아오는 건 어김없이 힘의 굴복이었다. 목숨에는 크게 지장 없는 곳만 골라서 담배로 몸을 지졌고 칼로 몸을 찌르며 고문했다. 온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고분고분하게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 나에게는 새로운 처방을 내려졌다. 막사에 주사기를 들 군인 한 명과 총을 둘러멘 군인 2명이 들어왔다. 가뜩이나 좁은 막사가 성인 남자 3명이 들어서자 숨 쉴 틈 없이 꽉 차버렸다.
주사기를 들은 군인이 눈짓하자 나머지 2명의 군인이 나에게 달려들어 위에서 짓눌렀다. 주사기를 들고 있던 군인은 주사기를 자신의 손으로 톡톡 치더니 내 팔에 주삿바늘을 꼽고 약을 밀어 넣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주사기의 약이 모두 내 몸속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나를 짓누르고 있던 군인이 막사를 나갔다. 일본군인 이 나에게 놓은 건 아편이었다. 약 기운이 도는 탓인지 정신이 몽롱했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조금 전까지 주먹으로 맞아 욱신거리던 얼굴과 바늘로 찌르는듯한 통증이 느껴지던 밑은 더는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졸린 듯이 멍했다. 눈이 스르르 감겼다. 아까 보지 못한 남자가 내 위에서 히히거리며 연신 미쓰코라고 외쳤다.

‘내 이름은 순이라니까..’

다시 눈이 감겼다. 그리고 아까와는 또 다른 남성의 얼굴이 내 위에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변극처럼 변하는 남자들의 얼굴들. 나는 1평 남짓한 막사 안에서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인형에 불과했다.

웬일인지 그날은 아침이 되었는데도 막사 앞에 군인들이 모이지 않아 의아했다. 군인들은 우리 모두를 막사 밖으로 나오라고 명했고 밖으로 모인 우린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치를 보고 있었다. 밖에 나오자 저 멀리 J의 모습이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J의 얼굴에 반가웠지만, J는 많이 야위어 있었다.
나 역시 군인들의 인솔을 받아 밖으로 나오자 먼저 밖에 나와 있던 소녀의 말로는 정기적인 성병 검사를 위해 모인 것이라고 말해줬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모두 모이자 첫날 도망치는 소녀를 총으로 쏴버린 장교가 단상 위에 올라섰다. 그는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권위에 가득한 모습으로 말했다.

“오늘 너희들은 병원으로 이송되어 성병 검사를 한다. 만약 성병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일 경우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다.”

장교의 말을 듣고 있던 소녀가 나에게 소곤거렸다.

“저 말은 우리가 병에 걸렸으면 죽인다는 말이야.”

나는 너무나도 부당한 처사에 화가 치밀었다. 우리를 강제로 이곳으로 끌고 온 것도 일본군이었고 설령 우리가 병에 걸렸다면 그 병을 옮긴 것도 일본군일 터인데 왜 모든 책임은 우리에게만 지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가슴속에서 수많은 의구심과 분노가 올라왔지만, 약자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침묵만이었다. 모든 소녀가 패잔병처럼 장교의 말에 우리의 고개는 땅으로 떨궈졌다.
적막이 깬 건 다름 아닌 J였다. J는 우리가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장교를 향해 말했다.

“왜 우리는 원치 않는 성관계를 계속해야 하고 또 지금같이 모든 책임은 저희가 져야 하나요?”

내가 기억하는 J는 평소 내성적인 성격이었기에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도 부끄러워하는 성격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J는 그 누구보다 당당했다.
J의 말을 들은 일본 장교의 표정이 붉으락푸르락 거리며 구겨졌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일본 장교는 J를 향해 소리쳤다.

“저년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죽여. 지금 당장.”

장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본 병사들은 J를 잡아서 앞으로 끌고 나갔다. 일본군은 장교의 앞으로 끌고 간 J를 우리가 보는 앞에서 입고 있던 모든 옷을 벗겨버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J는 제대로 음식을 못 먹은 탓인지 갈비뼈가 드러날 만큼 피골이 상접했다. 일본군은 J의 가랑이를 벌려 묶었고 손도 뒤로 묶어 어떠한 반항도 할 수 없게 했다. 나는 J의 모습을 보자 눈물이 차올랐다. J는 이미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듯 조용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모두 일본군의 행동을 주시하며 J를 바라봤다.
잠시 뒤 시뻘겋게 달구어진 쇠막대기를 가져온 일본군은 J의 음부에 쇠막대기를 집어넣었다. J는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고 살이 타는 노린내가 공기 중에 퍼지자 소녀들은 소리를 지르고 구토를 했다. J의 몸이 심하게 진동하듯 떨리다가 축 늘어져다. 입에서 거품이 흘렀고 눈은 흰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미 죽은 J의 몸을 일본 병사는 몇 번이나 더 후벼 파고 있었다. 잠시 뒤 병사가 뽑아낸 쇠막대기에는 검게 탄 J의 살점이 붙어있었다.
장교는 더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J를 보자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다. 벌거벗은 J를 천천히 바라봤다. J역시 일본군에게 성관계하며 모진 고문을 받았는지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그리고 내 시선은 J의 발에 멈췄다. 묶여 있는 J의 엄지발톱에는 내가 해준 주황색 봉선화 물이 반쯤 남아 물들어있었다.

일본 병사들은 J의 모습을 보며 연신 웃어댔고 장교 또한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우리들의 쾌락을 위해 존재하는 암캐다. 개에 대한 모든 권리는 주인에게 있다.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좋으니 너희들에게 고깃국을 상으로 주겠다.”

장교는 커다란 가마솥에 J를 토막 내 넣었다. 그 모습을 보고 여기저기서 소녀들의 비명이 들렸다. 소녀들과는 대비되게 장교와 일본군은 웃었다. 짐승 같은 놈들이었다. 아니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후 한 번 각인된 공포의 효과는 대단했다. 대부분 소녀는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고 그들이 원하는 인형이 되어 버렸다. 나 역시 J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허망했다. 아무리 아프고 싫어도 반항하지 않았다.

몇 번의 계절이 바뀌었다.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었지만 질긴 목숨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먹은 것도 없는 내 몸이 조금씩 불러오기 시작했다. 이런 내 몸의 변화는 나보다 일본군이 먼저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헐벗은 내 몸을 나보다 더 많이 보는 게 저들이었다.

그들은 나를 의료장비나 위생상태도 변변치 못한 어둡고 컴컴한 병원으로 끌고 갔다. 그곳에서 나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자궁과 사람의 형상을 채 갖추지도 못한 아이를 함께 끄집어냈다. 그들이 자궁까지 도려낸 이유는 ‘재발’을 막는다는 이유였다.

정상적인 치료는 당연히 없었고 이미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렸지만 그런 나에게 일본군은 어김없이 다시 줄을 섰다. 내 몸 상태에 대해선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오직 자신들의 수욕만을 해결하면 그만이었다.
수백, 수천 번의 관계 속에서 매 순간 미친 듯이 소리쳤다. 그만하라고, 나도 사람이라고, 나도 꿈이 많은 소녀라고 외치고 또 외쳤다. 하지만 말이라는 건 사람에게만 통하는 법이었다.
저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그랬다. 사람 말을 하는 짐승. 내 눈에는 보이는 저들의 모습은 그랬다.

일본군의 야욕으로 시작된 전쟁이 길어지면서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들의 승전보에 조금씩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전쟁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지만, 일본군이 거처를 옮길 때마다 우리들의 거처도 함께 옮겨졌고 그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일본 쪽에 안 좋게 흘러간다는 건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 군인 한 명이 잔뜩 인상을 쓰며 막사로 들어왔다. 그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안에 있는 우리 모두를 밖으로 나오라고 명했다. 얼마 전에 성병도 검사했기에 모두 의아해하며 밖으로 나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밖으로 모든 소녀가 나오자 일본군은 7명씩 끊어 줄을 맞춰 세웠다. 모든 소녀의 줄이 세워지자 첫 번째 줄부터 자신들을 순서대로 따라오라고 명령했다. 난 세 번째 줄에 서 있었다. 첫 번째 줄에 선 소녀들은 영문도 모르고 일본 군인을 따라갔다. 일본 군인과 함께 소녀들이 시야에서 사라졌고 대략 2~3분의 시간이 흐르자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소녀들은 느닷없는 총성에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그러나 일본 군인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총성에 우리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군인이 어린 소녀들보다 태연한 게 나는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다. 겁에 질린 소녀를 향해 일본군은 두 번째 줄 소녀들은 앞에 인솔하는 일본 군인을 따라가라는 명령만 내릴 뿐이었다.
총성 소리에 겁을 먹은 소녀들이 움직이지 않자 우릴 에워싸고 있던 군인 한 명이 가장 앞줄에 있는 소녀 한 명을 그 자리에서 총으로 쏴 죽여버렸다. 너무 무서웠다. 다시 군인은 어서 앞으로 가라며 두 번째 줄에 있는 소녀들을 재촉했다. 소녀들은 쭈뼛거리며 이동했고 그들 역시 시야에서 사라지자 총성이 울렸다.

두 번째의 총성이 울리자 나는 직감적으로 일본군이 우리 모두를 죽이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자리에서 버티면 그 자리에서 죽을 뿐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자기 죽음을 알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모습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구나.’

부모님의 얼굴 한번 보기 위해 온갖 치욕과 고통을 견뎠는데 마지막 결말은 너무나도 허망하고 처량했다. 나에게도 일본군이 총칼로 위협하며 앞으로 이동하라 명했다. 공포에 질린 채 천근 같은 무거운 발걸음을 한 걸음씩 옮겼다.
그때였다. 갑자기 귀를 찢는 사이렌 소리가 퍼졌고 총성이 빗발쳤다. 연합군이 우리가 있는 곳을 급습한 것이다. 나를 인솔하던 일본군도 날아오는 총알에 맞아 쓰러졌다. 고막을 찢는듯한 헬기 소리와 총성, 파열음이 터졌다. 귀를 막고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엄마와 아빠를 울부짖었다.
나는 기사회생으로 연합군에 의해 구출되었다. 일본군이 우리를 죽였던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증거인멸이었다.

연합군에 의해 겨우 목숨은 부지했지만 먼 타지에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 마음만큼 쉽지 않았다. 몸도 정상이 아니었고 돈도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오직 부모님을 다시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뿐이었다. 악착같이 돈을 모아 힘들게 귀향을 했지만,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부모님은 내가 사라지고 나를 찾기 위해 밤낮없이 한참을 찾아 돌아다니셨다 했다. 마음이 다시금 찢어지는 것 같았다. J의 부모님 역시 돌아가셨다. 한편으로는 J의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을에서 나를 마주한 사람들은 나를 보고 화냥년이라고 손가락질했다. 일본군과 붙어먹은 년이라며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내 조국, 내 고향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J도 부모님도 없는 고향에 더는 있을 이유가 없었다.

단 한 번도 이런 삶을 원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미 나에게 벌어진 일이고 과거를 되돌릴 순 없는 현실이었다. J와 봉선화 물을 들였던 마을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엔 내 가슴속 멍울처럼 붉은 봉선화가 피어있었다. 나는 봉선화를 꺾어 챙긴 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고향을 떠났다.
어린 시절 내 꿈은 크게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하는 동네 오빠 K와 결혼해서 그 사람 눈매를 닮은 아이도 낳고 함께 나이를 먹으면서 내 자식의 손주도 보고 싶은 게 전부였다. 그러나 그 꿈은 더이상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지금은 나라는 사람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은게 전부였다. 그리고 정말 조용히 생을 살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월이 많이 흘러버렸다.
얼굴에 피었던 뽀얀 솜털은 깊게 파인 주름이 대신했고 돌멩이로 공기놀이를 하며 깔깔대던 14살 소녀의 머리는 하얗게 셌다.
내 과거를 모르는 이는 지금 나이에 죽으면 호상이라는 말을 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과연 누가 우리의 진실을 기억해줄까. 진실을 기억하는 모든 이가 죽는다면 일본에 사과를 받을 수 있을까?

요즘은 부쩍 힘이 든다. 움직이는 것도 숨 쉬는 것도 모두 예전만 못하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가족 한 명 없는 노인네의 죽음을 세상은 크게 관심 가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나는 ‘위안부’라는 주홍글씨를 지우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은 죽을 수 없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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