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꿈

내 이름은 ‘순이’다. 요즘 듣기에는 촌스럽게 느껴질 리 몰라도 나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었고 그 시절에는 그렇게 촌스럽게 느껴지는 이름도 아니었기에 나는 마음에 들었다. 부모님은 농업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셨는데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여도 농사일은 태산처럼 많았다. 당연히 부모님이 나에게 신경을 써줄 겨를은 부족했고 나는  J와 자주 어울려 놀았다. J의 집 역시 우리 집처럼 농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집이었기에 Read more about 소녀의 꿈[…]

죽음에 관하여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학제개편으로 인해 지금은 모두 초등학교, 초등학생이라고 바꿔 말을 하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국민학교, 국민학생이라고 불렀다. 더욱이 요즘이야 옆집에 누가 사는지 서로 관심조차 두지 않지만 내가 어렸던 그 시절은 집마다 숟가락 개수가 몇 개인지도 훤히 알만큼 이웃들과의 교류도 많았고 담장도 낮았다. 내가 그것을 처음으로 본 것은 국민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이었다. 평소와 Read more about 죽음에 관하여[…]

우리들의 영웅

이른 새벽 야음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미리 맞추어 둔 시계 알람이 울리자 양 노인은 지친 몸을 추스르고 잠에서 깨어났다. 거리에 물들어버린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고작 몇 시간 잠을 청하고 다시 일터로 향하는 고된 일상이었지만 단 하루도 불평해본 적 없었다. 그의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를 제외하곤 모두 절단되어 있었고 왼손 역시 팔꿈치 밑으로 절단되어 의수를 끼고 Read more about 우리들의 영웅[…]

인간의 조건

지금부터 작성될 이 문서는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한 인류 보고서이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냉철하지 못하며 어쩌면 식상할수도 있는 보고서이지만 그것마저도 나의 사명이기에 나는 이 문서를 작성한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변곡점을 그리며 눈부신 발전과 함께 성장해왔다. 인류가 불을 발견했을 때, 철기를 발견했을 때 인류는 계몽하였다. 그리고 다시 산업혁명과 근대화를 통해 인류는 다시 한번 개화를 한다. 우리가 Read more about 인간의 조건[…]

날 죽인 사람은 과연 누굴까

나는 창녀다. 아니 사람들이 나를 창녀라고 부른다. 창녀라는 말을 국어사전에 검색해보면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라고 정의되어 있다. 난 누군가에게 매음을 한 적은 당연히 없고 더욱이 추업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 나를 보는 모든 사람이 날 매춘부로 전추시켰다. 얼토당토 않은 말에 박론하며 상황의 전, 후 사정을 설명하였지만, 그것도 그때뿐이었고 Read more about 날 죽인 사람은 과연 누굴까[…]

예언자

화마와 같은 적갈색 모래바람이 삽시간에 피어올라 다가왔다. 크고 작은 모래알들이 얼굴을 할퀴며 작은 상처들을 만들어 냈지만 사내는 여의치 않고 두건을 코끝까지 추켜올릴 뿐이었다. 사막에서 해무처럼 피어오른 뿌연 모래폭풍은 한 치 앞의 시야조차 허락하지 않았기에 여행자의 발목을 묶어두는 늪과도 같았다. 지금 상황에선 모래폭풍이 걷히기 전까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내는 서둘러 바위 뒤로 몸을 웅크린 채 Read more about 예언자[…]

보고싶어요. 아빠.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거짓말같이 찾아오는 기적 같은 일들이 있다. 거듭된 우연이 일어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행운이 다가오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의 말에 의하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기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것, 다른 하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기적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분법적 선택지에서 내 삶은 오늘 이전까지는 주저 없이 전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Read more about 보고싶어요. 아빠.[…]

너는 아닐것 같지?

매달 반복되는 고지서, 카드대금, 보험료, 각종 할부금까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삶은 더운 여름날의 태양처럼 숨이 턱턱 막혔다. 이 나라의 구조가 문제일까? 아니면 내 월급이 문제일까? 아내에게 질문한다면 고민도 없이 후자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우리 가족의 씀씀이가 문제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원인이 무엇이든 지금 당장 급한 건 해결책을 세워야만 했다. 세 명의 가족 구성원이 한 명이 벌어오는 Read more about 너는 아닐것 같지?[…]

당신의 시간을 삽니다.

오 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에게 오늘은 삶의 축복이자 희망과 동의어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오늘은 휴일도 없이 매일같이 찾아와 내 숨통을 조여오는 지옥과도 같았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나는 미세한 숨소리마저 새어나갈까 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 손가락 한 마디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과도 칼을 움켜쥐고 창문 밖을 주시했다. 이 순간을 무사히 넘기지 못한다면 Read more about 당신의 시간을 삽니다.[…]